白壽 어른의 큰 가르침
白壽 어른의 큰 가르침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4.09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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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제주일보는 모처럼 가슴이 짠한 이야기를 전했다. 서귀포시 동홍동에 사는 올해 나이 99세 주관섭 할아버지가 저축했던 돈 2000만원을 ‘코로나19 극복 기금’으로 서귀포시에 내놓았다는 것이다.

주관섭 할아버지는 6·25 참전 용사다. 이날 전달된 기금은 주 할아버지가 국가로부터 받은 6·25 참전 국가유공자 수당을 수십년간 모은 돈이다.

주 할아버지의 기부 소식이 유별나게 가슴에 와 닿는 까닭은 가진 것 없는 이 할아버지야말로 사회의 도움을 받아야 할 처지인데도 꿋꿋이 생활해온 것은 물론 힘들게 모은 재산을 한 푼 남기지 않고 사회에 환원하려는 그 마음씨 때문이다.

이번 기부의 배경을 더 알아보면 가슴이 짠하다. 기부한 돈은 주 할아버지가 사망한 후 혼자 남을 할머니(82) 몫으로 남겨뒀다는 1000만원을 뺀 전 재산이라는 것이다.

주 할아버지는 국가유공자(무공수훈자)이자 기초생활수급자로 동홍주공3단지 임대아파트에 산다. 전 재산이 3500만원이던 주 할아버지 부부는 지난달 제주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400만원, 서귀포시 동홍10통노인회에 100만원을 먼저 기탁했다.

주 할아버지는 “정부로부터 지원받는 수당을 허투루 쓰지 않고 모아뒀다”며 “지금껏 주변 이웃과 국가의 도움으로 살아왔는데 이제 나도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여유 있는 생활을 하면서도 국가와 지역사회 그리고 이웃의 어려움에 눈감아온 대다수 보통 사람들은 주 할아버지 부부 앞에서 감히 얼굴을 들지 못 하게 됐다. 우리 사회는 물질적으로 엄청나게 발전했으나 그 부작용으로 돈을 가진 자는 더욱 돈을 벌고 돈이 없는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져서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가속화되고 있다.

최근 경제위기로 양극화 갈등은 더 심화되고 있다. 이 갈등을 해소하고 사회의 건전성을 확보하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기부문화의 창달이다.

그렇다면 기부문화를 어떻게 하면 활성화시킬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 우리 사회에서 기부하는 이들의 숫자가 늘어나는 건 사실이지만 구미 각국의 수준에 비하면 아직도 턱없이 부족한 것 또한 사실이다.

이러한 때에 주 할아버지는 우리들에게 백수(白壽 99세) 어른다운 큰 가르침을 주었다. 백수는 백(百, 100)자에서 일(一)을 빼면 99세, 즉 백자(白字)가 된다는 데서 붙여진 말이다.

영웅은 전쟁 영웅만 있는 게 아니다. 주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운 ‘사회적 영웅’으로 추앙받는 사회적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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