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팔 세대와 소비 트렌드
오팔 세대와 소비 트렌드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4.06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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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 제주아동문학협회장·동화 작가

종편 방송에서 트로트 오디션 미스트롯이 인기를 끌더니 올해에는 미스터트롯이 엄청난 열풍을 몰고 왔다. 

지난해 미스트롯 출연자가 단장의 미아리 고개를 부르는 걸 본 순간 ‘왜 하필이면 저 노래일까?’라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전쟁의 아픔을 여실하게 드러낸 직설적인 노랫말과 젊은 여자 가수가 전혀 어울리지 않아서 말이다. 

어쨌거나 그 가수는 정말 노래를 잘 불렀다. 어쩌면 원곡자보다도 훨씬 낫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당신은 철사 줄로 두 손 꽁꽁 묶인 채로 뒤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맨발로 절며 절며.’ 

그러나 이 대목에서 절제된 슬픔이 아니라 감정의 과잉에서 오는 거북함이 느껴졌다. 하지만 아쉬움은 거기서 살짝 멈췄다. 전쟁의 참혹함을 몸으로 겪어보지 못 한 세대가 70년 전 노래의 감정을 어떻게 완벽하게 전달할 수가 있으랴. 

듣는 나 또한 그 시대 상황을 겪어보지 않았으니 그 아픔을 네가 알겠냐 내가 알겠냐. 괜찮다. 까짓것 억지 슬픔에라도 속아주지 뭐. 그런 마음이다. 부모님 세대가 불렀던 노래라서 반가움이 더 앞선 까닭이다.

미스터트롯 역시 여러 가지 화제를 몰고 왔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특성 상 다음번에는 누가 살아남고 누가 탈락이 될까 궁금해서 기다려지기도 하고 마음 속으로 점수를 주며 나 홀로 심사를 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내가 응원한 사람이 되기라도 하면 마음이 흐뭇하다. 

오디션 프로의 묘미를 느끼며 다음 주를 또 기다리게 된다. 그러다가 막상 끝나게 되니 허전하다.

그런데 십대 어린아이가 증조할아버지나 불렀을 법한 희망가를 부르고 듣는 젊은이들이 눈시울을 붉히는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왜 하필 트로트인가? K팝이 세계를 휩쓰는 이 시대에…. 궁금증이 자꾸 생긴다. 

며칠 전 나는 잡지를 읽다가 의문의 답을 찾았다. 지난해 이슈가 됐던 키워드를 분석하고 도출해 낸 2020년 소비 트렌드를 10가지로 꼽은 중에 오팔 세대라는 키워드가 포함돼 있었다. 5060 소비자가 드러나지 않게 소비 시장에 큰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데 이들을 ‘오팔 세대’라고 명명하고 세밀하게 분석해 놓은 기사였다.

오팔 세대들은 인터넷이나 SNS에도 능하고 유튜브 등 젊은 세대들이 먼저 하는 것을 따라 하고 배우고 싶어 하는 특성이 있다. 아날로그적이기도 하지만 디지털 시대에 나름 적응해 가면서 은퇴를 하나의 과정으로 삼아 긴 노후를 준비하며 산다. 그래서 과거 세대와는 다르게 은퇴 후에도 각자 취미나 경력을 활용해 왕성한 활동을 하고 경제 활동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어르신들만 들을 것 같았던 트로트가 최근 방송에서 많이 다뤄지는 것도 오팔 세대의 영향이라는 것이다. 

나 역시 미스트롯이나 미스터트롯은 젊은이들이 선호하는 오디션 형식을 취한 것이 오팔 세대의 호응을 유도했을 거라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렸을 때 숱하게 들었거나 불렀던 트로트에 대해 아련한 기억을 가진 그들의 감성을 자극하면서 새로운 것을 따라가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려는 전략. 그것이 바로 트로트에다 오디션 프로그램 결합이라는 것이고 그게 실제로 주효했을 거라고 짐작해 본다.  

상품을 공급하는 입장에서 본다면 오팔 세대가 막강한 파워를 가진 소비층이라고 볼 수 있으니 그들의 지갑을 열 만한 상품을 출시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노래나 방송 프로그램도 하나의 상품으로 봤을 때 구매력을 가진 집단을 겨냥해야 소비가 촉진될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오팔 세대의 정서를 공략하기에는 오래된 트로트가 안성맞춤이었던 셈이지 싶다. 

당분간 방송에서 구성진 트로트를 들을 기회가 많을 것 같다. 노년 세대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 삶에 많은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왜 아니 그렇겠는가. 백세 시대라는데. 앞으로 얼마를 더 살아야 할지 모르는데.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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