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지 않아야 보이는 것들-코로나19와 의료체계
멈추지 않아야 보이는 것들-코로나19와 의료체계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4.05 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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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근 칼럼니스트

혜민 스님의 책 제목이 이렇던가 할게다. 멈춰야 보인다고. 

멈추지 않아도 보이면 좋으련만. 숲 속에 있으면서 나무만 보게 되니 늘 당연한 것의 소중함을 못 알아채기도 한다.

10개월 전 그동안 쌓아뒀던 스트레스와 타고난 저질 체력 덕인지 몸에 탈이 나고 흔한 암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닥쳤다. 

그 전까지 병원에 갈 일이 별로 없어 매달 내는 의료보험료가 많아 짜증이 났고 의료체계에 대한 생각은 뒷전이었다.  

코로나19가 여전히 기승 중인 일주일 전 다시 대학병원을 찾았다. 정기검진이다. 3개월에 한 번씩 암 수술 이후에 내 몸에서 혹시 다른 문제가 안 생겼는지 CT 촬영도 하고 MRI 촬영에 전신 뼈 촬영까지. 다른 기타 검사들이야 그 때의 필요에 따라 하는 것이고. 

1년이 되도록 검사가 있는 날이면 전날 밤부터 금식하고 오전 7시부터 피검사를 시작으로 온갖 검사에 진료를 마치고 나면 오후 1시가 된다. 

그래도 그 많은 검사를 한나절에 다 끝내는 종합병원의 시스템에 놀라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스스로 암이라는 말을 하긴 하지만 죽을 병은 아니라고 하니 건방을 떠는 점  이해하시길. 

아무리 흔하다 해도 인생을 살면서 암 진단을 받는 일은 놀랍지만 매우 불쾌한 경험인지라 내심 걱정스럽다. 

의학이 발달하지 못 한 옛날이었으면 환갑도 맞지 못 한 채 벌써 저 세상으로 갔겠구나 하는 생각을 늘 하게 된다.

코로나19에 대한 우리나라의 대응시스템이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끄는 모양이다. 

중국처럼 무식하리만치 물리적인 통제를 하지 않고도 어느 정도 코로나19의 확산을 제어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찬사다. 

덩달아 정부가 칭찬받고 질병관리본부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정부에 대한 평가는 모르겠지만 질병관리본부야 칭찬받아 마땅하다는 데 동의한다. 

반대로 유럽과 미국이 초토화되고 있는 상황을 실시간으로 접하게 되면서 나 역시 우리 사회의 의료시스템에 대해 소비자로서 입장을 생각하게 된다. 

매번 검사 때마다 진료비를 쳐다보고 있노라면 놀랍다. 약값을 포함해서 하루 동안 검사비와 진료비로 들어가는 돈을 합치면 200만원 정도가 된다. 

내가 내는 자기부담의료비는 7만원 남짓. 물론 약값은 비급여가 포함돼 10만원이 넘지만 3개월치의 약값치고는 감당할만하다. 

공교롭게 암 진단을 받으며 손해보험사로부터 이전에 약 처방을 고지하지 않은 이유로 실손보험은 해약이 돼버렸지만 그래도 견딜만하다. 아니 만족이다. 이 같은 검사를 받으면서 10만원도 안 되는 돈으로 내 건강을 확인할 수 있으니 말이다.

미국과 유럽이 코로나19로 만신창이가 되는 모습을 생중계하듯 바라본다. 가난한 사람들이 보험이 없어 치료를 받지 못 하는 미국의 시스템이야 많이 들었던 터라 작금의 상황이 이상하지도 않다. 

하지만 유럽의 시스템은 조금 의외인 게 사실이다. 막연하게나마 유럽의 의료시스템이 우리가 흔히 아는 요람에서 무덤까지 완벽히 보장되는 게 아니라는 건 들었는데 그 실체를 이처럼 위기 상황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내리라고는 생각 못 했다.

개인의 병 치료와 코로나19에 대한 대응을 보면서 몇십 년 동안 우리나라의 의료보험체계를 만들어 정착시킨 사람들에 대해 감사와 존경을 표한다. 지금의 시스템이 어느 정권에서 만들어져 정착됐든 국민 전체에게 차별 없이 적용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게 됐다.

멈추지 않아도 우리 사회의 의료체계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다.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 병원의 문턱이 얼마나 낮은지. 그리고 바이러스 감염 같은 위기 상황에서 국가의 의료시스템이 차별 없이 살아서 작동되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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