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않은 제주4·3의 봄…코로나19로 달라진 추념식
오지 않은 제주4·3의 봄…코로나19로 달라진 추념식
  • 정용기 김동건 기자
  • 승인 2020.04.03 12: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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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3일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2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편지를 낭독한 희생자 유족 김대호 군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제주 4·3 평화공원에서 열린 '제72주년 제주 4·3 희생자 추념식'에서 편지를 낭독한 희생자 유족 김대호 군을 격려하고 있다. 연합뉴스.

“72년 만에 아버지를 네모난 유골함으로 만난 우리 할머니는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3일 제72주년 제주4·3희생자추념식에 손자 김대호군(15)과 참석한 양춘자씨(74)는 평소 손자에게 평생소원이 3살 때 생이별한 아버지를 만나는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 아버지를 지난 1월 22일 4·3 유해발굴 신원확인 보고회를 통해 유골을 마주한 순간 양씨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김군은 “할머니는 선생님이었던 아버지를 똑똑이 할아버지로 자랑했다”며 “똑똑이 할아버지가 72년 만에 네모난 유골함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김군은 “할머니가 3살 때 돌아가셔서 얼굴을 모르는데도 유골을 보고 펑펑 울었다”고 얘기했다.

그는 “나도 똑똑이 할아버지처럼 훌륭한 선생님이 되겠다”며 “하늘에서 제가 꿈을 이루는 모습을 꼭 지켜봐달라”고 강조했다.

양씨처럼 4·3의 아픔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 희생자와 유족들, 그 가족은 이날 이른 아침부터 제주4·3평화공원을 찾아 억울하게 희생된 우리네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 친척의 넋을 기렸다.

이번 추념식은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참석자가 150여 명으로 대폭 축소됐다. 다만 안내에 따라 4·3 행방불명인 묘석 등엔 유족들의 발걸음이 간간이 이어졌다.

4·3평화공원 입구부터는 발열검사와 함께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설문이 이뤄졌다. 이동식 화장실에서는 코로나19 차단을 위한 소독이 이뤄지는 등 예년 추념식에서 볼 수 없었던 모습이 곳곳에서 확인됐다.

3일 4·3평화공원 행불인 묘역에서 김춘보씨 가족들이 4·3 당시 희생된 김영오.김병읍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용기 기자.
3일 4·3평화공원 행불인 묘역에서 김춘보씨 가족들이 4·3 당시 희생된 김영오.김병읍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정용기 기자.

행불인 묘역에서 만난 김춘보씨(75)는 “1948년 11월쯤 토벌대가 의귀리에 갑자기 들이닥쳐 불을 지르며 사람들을 죽였다”며 “같은 동네에 살던 작은할아버지 덕분에 가족이 급히 피해 겨우 목숨을 구했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김씨는 “이듬해 1949년 ‘귀순하면 살려준다’는 삐라(전단)을 보고 숨어있던 산에서 내려왔는데 제주항 부근 주정공장 창고에 수감됐다”며 “할아버지와 아버지만 남고 나머지 가족들은 풀려났는데 그게 마지막 인사였다”고 말했다.

김 할아버지는 그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목포형무소에서 복역하다가 석방됐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끝내 만나지 못했다.

김씨는 가족들에게 전해 듣고 경험한 내용 등을 토대로 지난해 9월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엔본부에서 4·3피해를 증언하기도 했다.

이날 추념식에서 만난 4·3희생자 유족들은 “이제 가족들을 4·3평화공원 그리고 내 마음속에서 기억하며 살고 있다”며 “바라는 점이 있다면 모든 희생자와 유족들의 숙원인 4·3특별법이 개정돼 한이 풀렸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정용기 김동건 기자  brave@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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