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맺힌 제주4·3, 청년들이 제대로 기억해 달라”
"한 맺힌 제주4·3, 청년들이 제대로 기억해 달라”
  • 정용기 기자
  • 승인 2020.04.02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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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주년 4·3희생자 추념식
생존희생자 양일화 할아버지의 당부

 

제72주년 4·3희생자추념식을 며칠 앞둔 지난달 31일 제주시 연동 한 공원에서 4·3 생존 희생자 양일화 할아버지(왼쪽)와 그의 손녀 진나래양이 미소짓고 있다. 사진=임창덕 기자 kko@jejuilbo.net

“제주4·3은 아직 한(恨) 맺힌 역사이기 때문에 청년들이 왜곡된 것은 바로 잡고 제대로 알려 나가야 해.” 

제72주년 제주4·3 추념식을 며칠 앞둔 지난달 31일 제주시 연동 소재 자택에서 만난 4·3 생존희생자 양일화 할아버지(90)는 청년들이 4·3 진상규명에 앞장서 올바른 역사가 계승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양 할아버지는 불법 군사재판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수형인 18명과 함께 명예회복을 위한 재심 청구에 나서 지난해 1월 법원으로부터 무죄 취지의 공소기각 판결을 이끌어 냈다.

양 할아버지는 “4·3 희생자의 명예회복과 직결되는 게 특별법 개정인데 정쟁 싸움, 갈등으로 아까운 시간만 허비하며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 답답하고 안타깝다”며 국회의원들을 지적했다.

그는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분들이 많다. 여기에 코로나19 때문에 특별법 개정 논의도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추념식에서 정치인들에게 제대로 의견을 제대로 피력 못하게 됐다”고 말했다.

손녀 진나래양(18·제주여상 2)은 할아버지의 손을 잡으며 “가족, 이웃들이 겪은 제주의 역사니까 절대 잊지 않고 저도 친구들도 학생으로서 할 수 있는 역할에 대해 더 고민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진나래양은 학교에서 4·3 관련 과제가 있을 때면 할아버지에게 당시 상황을 자세히 물어보고 글로 쓰며 기억했다.

진양은 “ 4·3을 처음엔 잘 몰랐는데 할아버지를 통해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역사임을 깨닫게 됐다”고 털어놨다.

제주시 한림읍 금악리가 고향인 양 할아버지는 1948년 11월 제주읍에 있는 친척집으로 갔다가 서문다리 인근에서 대한청년단에게 잡혀 '빨갱이'로 내몰렸다.

그해 12월 27일 군법회의에서 내란죄를 적용 받아 징역 5년을 선고 받아 인천형무소로 향했지만 복역 중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북으로 끌려가기도 했다. 석방 후인 1953년 6월에는 징집 영장이 나와 군생활을 하는 등 기구한 삶을 살았다.

양 할아버지는 무수한 고문을 당해 무릎, 허리 통증으로 힘든 몸을 이끌고 수시로 병원을 드나들면서도 특별법 개정을 비롯한 당면 과제에 대해서는 조속히 해결돼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올해는 감염병 때문에 추념식도 못갈거 같다. 희생자들이 살아서 못다 이룬 부분을 꼭 젊은 청년들이 맡아 억울한 부분을 풀어 달라”고 당부했다.

제주4·3희생자유족회에 따르면 4·3 당시 2만5000명에서 3만명의 도민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현재까지 1만4532명만 희생자로 인정된 상태다.

희생자 유족도 8만명이 넘는다. 희생자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2017년 12월 발의된 4·3특별법 개정안은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배·보상, 불법 군사재판 무효화 등을 담고 있으나 국회에서 2년 4개월째 표류하고 있다.

올해 추념식은 코로나19 확산 차단을 위해 4·3 유족 및 관련 단체 대표 등 역대 최소 규모인 1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봉행된다.

정용기 기자  brave@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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