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잎클로버
세잎클로버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3.31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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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희 시인

바닥까지 가본 사람들은 말한다

결국 바닥은 보이지 않는다고

바닥은 보이지 않지만

그냥 바닥까지 걸어가는 것이라고

바닥까지 걸어가야만 다시 돌아올 수 있다고

- 정호승 바닥에 대하여중에서

 

지금처럼 이 시가 와 닿는 적이 없다. 코로나19 감염자와 사망자의 수를 확인하면서 일상으로 돌아가는 길이 점점 멀어지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

자연에 대한 무분별한 침범이 낳은 재앙일까. 날이 갈수록 사람들은 세계 곳곳을 탐험하기를 즐기며 가볍고 쉽게 드나든다. 오지를 비롯한 자연의 영역까지도 인간의 발길이 분주하다. 자연의 생태계에 피해를 끼쳤음은 자명하다. 이제 좀 자중하길 바라는 하늘의 지엄한 벌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외출할 일이 있을 때마다 마스크를 챙겨 쓰고 수시로 손을 씻거나 세정제를 발라 문지르는 게 일상이 되어간다. 모든 모임은 취소되고 전화로만 안부를 묻는다.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이 중요하겠다는 생각에 외출을 자제하다 보니 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신세다. 답답한 마음으로 냉장고 문만 여닫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러다 정말 우울증으로 이르게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예전 같았으면 아파트 앞 도로에 환하게 핀 벚꽃으로 들떴을 시기다. 지인들과 막 돋아나는 쑥을 캐어다가 인절미를 해서 먹는 즐거움도 접어 두어야 한다. 봄볕 맞으며 날마다 올라오는 고사리를 꺾으러 나갈 들뜬 계획도 자욱한 안개에 가려 신명나질 않는다.

해마다 찾아가 즐기던 제주대학교 진입로의 벚꽃은 올해도 만발한 지. 벚나무 아래 두 팔을 벌리고 눈처럼 날리는 꽃비를 맞고 선 모습을 상상만 해 볼 뿐이다. 봄마다 누리는 소소한 즐거움을 올해도 누릴 수 있을지 미지수다.

어머니를 뵈러 친정집에 갔다가 무더기로 자란 클로버를 본다. 수 없이 많은 잎들 중에서 행운을 준다는 네잎클로버를 찾는다고 열을 올리던 옛 생각에 눈동자를 허리를 굽혀 들여다본다. 여전히 평범한 세잎클로버만 눈에 들어 왔지만 세 잎이 오히려 반갑다. 대수롭지 않던 평범한 일상들에 대한 그리움과 소중함을 절절히 느낀 뒤라 그런 것 같다.

바닥, 그 끝이 언제가 될는지 암담하지만 두 발로 딛고 서는 날이 어서 오기를 기다린다.

오늘도 외출을 삼가고 신규 확진자의 숫자가 낮아지길 기대하며 TV 앞에서 소식을 듣는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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