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래불사춘
춘래불사춘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3.30 1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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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 전 서울신문 편집부국장·논설위원

향기롭다. 겨우내 무거웠던 몸을 털어내고 새로운 날개를 펴는 꽃내음이 향기롭다. 우리는 꽃에 심취한다. 그러다 보면 시도 쓰고 노래도 하겠다.
봄이다. 제주의 봄, 낮에는 향기로 입맞춤을 하며 밤하늘은 유별나게 반짝인다. 파도 소리가 님이 찾아오듯 사분사분 다가온다. 별빛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저마다 사랑의 배를 타고 밤하늘을 수놓고 있다. 여미진 옷고름을 풀어헤치게 한다. 봄의 밤하늘은 그렇게 찾아온다. 한라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장엄한 저녁 노을의 먹구름을 걷어내면서 말이다.
이런 광경을 보는 것은 누구의 몫일까. 설망대 할망일까. 아니면 마을마다 전설 따라 신화 따라 존재해 온 당신(堂神)일까. 아니다. 인간은 유일하게 아름다움을 훔칠 수 있다. 꽃이 지고 계절이 바뀌면 울고 불고 난리 부르스를 친다. 꽃말에서 보듯이 사랑, 정열, 성공, 그리움, 이별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봄 하면 생각나는 것이 꽃과 노래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봄의 왈츠’는 천재 요한 스트라우스가 자신의 오페라타가 ‘유쾌한 전쟁 부다페스트’에서 초연되는 지휘를 위해 58세된 1883년 2월 헝가리에서 우연히 초대된 디너파티에서 이미 친분이 두터운 리스트와 집주인을 위해 즉흥적으로 왈츠곡을 연주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봄 아가씨 동백, 봄의 선구자 진달래,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의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등으로 등장한다. 이 밖에도 많다. 산수유, 개나리, 철쭉 등도 우리에게 오라고 손짓한다. 만약에 꽃구경 간다면 노래 한 자락이라도도 해야 되겠지. 봄이 오거나 가거나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가 있다. 가수 전영록의 어머니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이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오늘도 꽃 편지 내던지며/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이 노래는 애조 띤 슬픔을 밑바탕에 깔면서 봄바람, 옷고름, 맹세, 풀잎, 꽃편지 등을 휘날리며 봄의 애처로움을 진득하게 담아내고 있다. 본래 화가였던 작사가 손로원이 한국전쟁 당시 부산 피난시절 판잣집에 불이 나면서 연분홍 치마차림의 어머니 사진이 불에 타자 그 모습을 그리며 쓴 노랫말에 박시춘씨가 곡을 붙였다. 전쟁이 끝나고 포연이 걷힌 뒤의 하얀 세상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전쟁 직후의 정신적인 피폐를 위로하는 짙은 서정성으로 일찍이 대중의 큰 호응을 받았고 2003년 시인 대상 설문조사에서는 애창 대중가요 1위로 선정되기도 했다. 발표된 지 60년이 넘었지만 지금까지 트롯, 통기타, 록, 창, 재즈 등 다양한 리듬으로 편곡돼 각각 그 시대를 대표하는 가수들로부터 꾸준히 애창돼 오고 있어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무르면서 떠나질 않고  있다.
또 있다. 가곡 ‘봄처녀 제 오시네’이다. 노랫말만 봐도 무슨 뜻인지 알 수 있다. ‘봄처녀 제 오시네/새 풀옷을 입으셨네/하얀 구름 너울 쓰고/진주 이슬 신으셨네/꽃다발 가슴에 안고/뉘를 찾아오시는가.’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있다. 맘에도 없는 흉노족에게 시집을 간 왕소군의 심정을 옮겨놓은 한시에 나오는 구절로 중국 한나라의 4대 미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는 흉노에서 춘래불사춘이라고 했는데 ‘오랑캐 땅이라고 꽃과 풀이 없으랴마는 봄이 와도 봄 같지가 않구나’라는 뜻이다.
올해도 봄은 어김없이 왔지만 ‘춘래불사춘’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마음 같아서는 밖으로 나가 봄맞이를 하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심정이다.
전국을 강타한 코로나19가 동장군보다 더 혹독 해지는 마음이다. 꽃구경 갔다가 확진환자가 된 사람도 있다. 가고는 싶지만 여럿이 가지 말고 한두 사람 정도 사색하면서 가면 어떨까.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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