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20.03.2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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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바이러스가 만들어 낸 ‘사회적 거리두기’ 시즌.
사람 인(人)과 사이 간(間), 즉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 그 거리를 생각해 보는 봄이다.
우리말 ‘사람’에 대응되는 한자어는 ‘인간(人間)’이다. 그런데 인간이라는 한자어가 본래부터 사람이라는 의미로 쓰여 온 것은 아니다.
‘인생세간(人生世間)’이 줄어든 말이라고도 한다. 그 글자 뜻에 충실하여 풀이하면 ‘인간’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이라는 의미를 띤다. 저 세상 천계(天界)에 대해 사람들이 오순도순 모여 지내는 이 세상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인간은 사람의 사이이다”라는 월인석보(月印釋譜)의 풀이를 새겨보면 그 본 뜻이 더욱 분명해진다.

▲정부가 다음 달 5일까지 코로나19 감염 차단을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을 고강도로 시행한 후 성과를 봐서 완화할 것이라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행사나 모임 참가 자제, 외출 자제 등이 확대되면서 ‘집콕족’이라는 신조어도 나왔다.
특히 사람을 만날 경우 ‘2m 이상 거리두기’를 권고해서 사람 만나는 것도 다들 피하고 있다. 사정이 이러니 잘 나가던 카페도 한산하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침이 튀는 거리가 2m 정도라서 감염 피해를 막기 위한 효과적인 격리(거리)를 이렇게 시행한다’라고 했다.
하지만 그런 ‘침 튀는 거리’를 어떻게 ‘사회적 거리두기’라고 이름을 붙였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원래 사회학에서 말하는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와는 개념과 그 본질이 다르다.

▲미국의 사회학자 R.E 파커가 제시하는 사회적 거리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 거리를 말한다.
일례로 생산과 소비를 함께하는 농촌의 가족과 그것이 분리된 도시의 가족을 비교했을 때 어느 가족이 관계가 가까울까? 농촌의 가족이 훨씬 사회적 거리가 가깝다는 이론이다.
또 미국의 문화인류학자 E.T 홀은 그의 책 ‘숨겨진 차원’에서 인간관계를 4가지의 거리로 분류한다.
‘친밀한 거리’는 가족이나 연인 사이의 거리로 0~46㎝ 정도의 거리다. 착 달라붙어있거나 아주 조금 떨어져 있는 편안한 관계다. 두 번째 ‘개인적 거리’는 친구나 지인간의 거리로 46~120㎝ 정도라고 분석한다. 대화를 나누기에 좋은 사이다.
또 ‘공적인 거리’는 360㎝ 이상이다. 공연을 할 때 무대와 객석 사이도 이 정도는 띄워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개인적 거리와 공적인 거리 그 중간에 사회적 거리가 있단다. 보통 사회 생활을 할 때 공공장소에서 대개 유지하고자 하는 거리다. 120~360㎝ 정도다.

▲침이 튀는 거리가 2m 정도가 된다고 사회적 거리두기라고 이름을 붙인 당국의 조어(造語) 발상에 웃음이 나온다.
하여튼 지금 ‘사회적 거리두기’ 캠페인이 사회적 단절이나 ‘마음의 거리’를 더 벌리는 일이 되지 말았으면 좋겠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지난 20일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표현이 사회적으로 단절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며 ‘물리적 거리두기(physicaldistan cing)’라고 하자고 제안했다.
사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에는 인간의 모든 문제가 압축돼 있다. 인간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마음을 알고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뜻하지 않게 나와 너를 벌려 놓은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다.
서로를 뜨겁게 열망했던 그 시간으로 돌아가는 길도 그 마음의 거리에 있을 것 같다.
인간은 사람과 사람의 사이, 즉 사람들 사이에서만 창조될 수 있다고 하니까.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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