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고개
보릿고개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3.24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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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선 수필가

제주도립미술관에서 브루클린 미술관 순회 전시 프렌치 모던을 관람했다. 순회전을 통해 세계적인 작품을 도민이 관람하기는 극히 드문 일이다. 모네에서 마티스까지 진품이 전시됐다.

그 중에서 건초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탈곡하기 전 알곡 채 쌓아둔 낟가리 같기도 하고 탈곡 후 동물의 먹이가 될 건초답기도 하다. 살아있는 생명력이 꿈틀거린다. 모네는 노르망디에 머물면서 건초더미를 연작으로 25점이나 그렸다. 빛과 어둠, 계절, 날씨 영향에 따라 변하는 작품을 표현했다. 각기 다른 시간대에 따라 그리다 보니 연작까지 나온 배경이 됐다.

인상파 화가인 모네의 작품 중에서 건초더미가 1300억여 원에 낙찰된 일은 이번이 처음이라 한다. 원뿔형으로 꼭대기에 노람쥐를 올린 것과 둥근 원형으로 그려진 바닥 그림은 백 년도 넘었지만 시대를 초월해 선명하다. 지금의 자연사랑을 소박하고 평범하게 그려낸 풍경으로 보인다. 모네가 그렸을 당시에는 진가를 발휘 못 했어도 애호가의 경매시장에서 최고가(高價)다움은 자연사랑이 변함없어서일까.

모네의 작품에 몰입하노라니 젊은 시절이 그리워진다. 시아버지는 봄이 지나고 보리농사를 거둘 때면 한 사람의 일꾼도 아쉬워했다. 나는 야참을 준비해 남편이 출근한 후에라야 밭에 도착했다. 농사에 경험이 없기에 눈치껏 시키는 대로 거들었다.

보리를 베어낸 후 이삼일이 지나면 한 단으로 묶을 수 있게 올려놓는다. 젊은 일꾼이 없어서인지 상체를 구부려야 할 수 있는 좌우에서 더미 올리기는 내가 했다. 시아버지는 허리춤에 찬 꼬아진 줄을 뽑아 한 단씩 묶어 낸다.

군데군데 묶어놓은 보릿단은 밭에서 탈곡할 때까지 둥그렇게 낟가리를 만들어 쌓아 두었다. 비에 젖지 않게 하려면 꼭대기는 노람쥐를 두 겹으로 덮었다. 보리 탈곡기에 의해 알곡을 분리할 일정을 바삐 맞추어야 식량으로써 완성품이 된다. 탈곡 이후의 보릿짚은 건초더미가 돼 밭에 임시 자리했다. 모네의 건초더미는 내가 일손을 거들었던 낟가리이다.

몇 차례의 이동을 거쳐 집 마당에 내려진 보릿짚은 우영팟 구석에 보리눌을 눌었다. 굽 돌을 둥그렇게 놓고 쌓았다. 몇 단씩 빼낼 때도 골고루 돌아가며 뽑아야지 몰락하지 않는다. 건초더미는 부엌에서 땔감으로 사용하며 일생을 마감한다. 한 줌의 재로 산화되면서 장렬하게 불치로 남아 밭의 거름이 된다.

자연의 법칙은 변하지 않나 보다. 모네의 작품은 150번도 넘게 자연으로 돌아갔다고 시간여행을 시켜주고 있다. 모네도 식량이 떨어져갈 때쯤이면 설익은 보리 알곡으로 배를 채웠을까. 우리는 손으로 비비고 입으로 불어 까끄라기를 턴 후 지은 설익은 보리밥을 기억한다. 건초더미를 응시하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요즘 핫한 미스터 트로트 소년이 보릿고개를 열창하고 있다. 눈물겨웠던 보릿고개 감성을 녹아들게 한다. 전세계가 코로나19 사태로 힘들어 하는데 보릿고개를 생각한다면 이 또한 지나가리라 믿는다. 햇볕이 따스하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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