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세상에 가서야 풀리는 문제
저 세상에 가서야 풀리는 문제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20.03.2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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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아(자폐)를 둔 부모는 하늘에 가서야 고통에서 헤어나는가.
서귀포시 남원읍 공동묘지 인근에 주차된 차량에서 발달장애(자폐)를 앓고 있는 고등학생 A군(18)과 그의 어머니(48)가 숨진 채 발견됐다는 보도를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제주시에 살고 있는 어머니는 지난주 화창한 봄날 아침에, 자폐 아들과 함께 소풍을 떠나듯이 집을 나섰다. 남편과 가족에게 유서를 남긴 채. 남편이 경찰에 신고하고 휴대폰 위치추적을 통해 이 모자(母子)를 찾아냈으나 안타깝게도 숨진 후였다. 유서는 “삶이 너무 힘들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문득 로마 바티칸에서 보았던 숨진 예수를 품에 안은 피에타 모자상이 떠오르고 먼저 간 사람들이 생각났다. 국립대 교수였던 초·중·고 동창 녀석과 친척 형님은 자폐 아들을 키우면서 우울증을 겪다가 저 세상으로 먼저 갔다.

▲봄은 참 잔인하다.
어느 지방에서 있었던 일도 역시 봄날이었다. 60대 모친이 자폐아들을 살해했다. 하지만 법원은 어머니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하고 석방했다.
중증의 자폐 아들은 약물로 통제되어 왔고 행동 문제로 인해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고 한다. 재판부는 “이 사건의 책임이 오롯이 피고인(어머니)에게 있다고 볼 수는 없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발달장애인과 그 가족을 위해 필요한 조처를 해야 한다는 법률 규정을 두고 있는데도 ‘충분한 지원’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했다.
국가와 지자체의 책임 소홀이 어머니의 극단적인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본 것이다. 법리적으로는 국가의 책임이기에 살해한 부모를 선처하는 판결이다.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 있는 정책이 있었다면, 충분한 지원이 있었다면, 이 가슴 아픈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고 가족의 고통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곧 4월 1일, 자폐증 인식의 날이다.
서귀포시에 사는 발달장애 아들을 둔 한 어머니. 다른 아이와 달리 ‘불러도 대답 없는 아이, 아파도 아프다고 말 못 하는 아이, 식당에서 소리치며 울어대는 아이….’ 발달장애 아이의 특성이라고 했다.
이 어머니는 “사회의 높은 벽 앞에 무릎을 꿇어 절망과 좌절로 몸부림치는 경험을 자주 마주한다”며 “(하지만) 죽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것이 아니기에, 그럴수록 세상을 바꾸어 보고자 마음다짐을 한다”고 했다.
그렇다. 죽음이 모든 것을 해결해 주는 건 아니다. 그래서 이 어머니는 ‘서귀포시장애인 부모회’를 만들고 오늘도 희망을 가꾸기 위해 거리를 걷는다.

▲영화 ‘말아톤’에서 자폐증을 가진 초원이 어머니의 소원은 초원이 보다 딱 하루만 더 사는 것이다. 자식보다 하루를 더 살기 바라는 것만큼 가슴 아픈 소원이 더 있을까.
실제로 자폐 아이를 둔 부모를 만나보면 아이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고 한다.
말아톤이란 영화가 만들어진 건 15년 전 2005년이다.
그런데 아직도 거리엔 발달장애아 부모의 눈물이 질펀하고 자폐 아들과 ‘죽음의 봄 소풍’을 떠난다.
저 세상에 간 친구와 친척 형님.
늘 ‘봄’ 같았던 영문학 교수, 그 친구는 올 봄에도 “Who loves the Trees Best?”,  “I” said the Spring(누가 나무를 제일 사랑하지?, ‘나’ 봄이 말했다)이라고 웃고 있을 것이다.
골프를 치다가 자폐 아들과 관련된 전화를 받고 경기를 중단하고 헐레벌떡 내려갔던 탑동에서 횟집을 하던 B형님도 오늘 장타를 날리고 “내 나이가 어때서~” 하고 있겠지.
자폐 문제는 저 세상에 가서야 풀린다고 하니까.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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