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마지막 카드를 먼저 꺼내려 하는가
왜 우리는 마지막 카드를 먼저 꺼내려 하는가
  • 제주일보
  • 승인 2020.03.22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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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중훈 시인·성산읍노인회장

급기야 WHO는 ‘코로나19’에 대해 지난  11일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선언을 하기에 이르렀다. 인간과 바이러스와의 보이지 않는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는 유럽 중세 사회에 있었던 대역병의 시대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대역병’, 즉 ‘흑사병’이라고 하는 이 전염병은 1347년에 이탈리아 시실리 섬에서부터 퍼지기 시작해서 불과 4년 사이에 전 유럽 인구 3분의 1의 목숨을 앗아 갔다. 

특히 런던을 폐허로 만든 이 유행병은 1665년부터 1666년 사이 런던 46만 인구의 25%에 달하는 사망자를 발생시킬 만큼 그 어떤 전쟁, 재앙보다도 무서운 역병으로 기록되며 역사는 이를 두고 ‘런던 대역병’(Great Plague of Lond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인간과 질병의 전쟁은 그 후에도 400년간 이어졌으며 최근에는 ‘사스’를 비롯한 ‘신종 플루’, ‘메르스’, 코로나19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인류는 이 같은 질병의 역사 속에서 살아왔으며 그 역사를 교훈 삼아 다음에 올지도 모를 질병과의 전쟁을 대비하며 살고 있다. 

인간 삶의 역사가 그러하듯 국가 혹은 사회도 그들이 생존을 위한 전략과 대책을 마련한다. 예를 든다면 일명 ‘국가비상사태대비훈련’ 같은 것도 이에 준한다고 할 것이다. 그 대비 계획과 훈련이 잘되고 못 되느냐에 따라서 국가 위기관리 능력을 평가받기도 한다. 

그렇다면 현재 우리는 어떤 대책으로 이 위기를 극복하고 있는가. 작게는 ‘마스크’대란에 대한 대책, 집단감염원 차단을 위한 ‘사회적 거리두기’ 등 한둘이 아니다.

더구나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정치권에서는 국민 전체 혹은 일부 계층에게 1인당 50만원에서 100만원의 재난기본소득을 지급하자는 주장도 일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에서도 긴급 경제대책의 일환으로 국민에게 현금 나눠주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우리 국민은 이미 IMF를 경험했다. 그때 우리는 어떤 정책으로 그 위기를 극복했던가. 재난기본소득 지원 같은 현금 지원 정책이었을까. 아니다. 고통을 함께 나누는 국민운동이 그 위기를 극복하는 힘이 됐으며 세계는 지금도 그것을 기억하고 있다. 

어느 노파의 소중한 금반지, 젊은 처자의 금목걸이, 심지어 어린아이의 돌반지마저도 위기 극복을 위해 쓰였던 따뜻한 국민운동이 그것이다. 국가 재정이 미국이나 일본처럼 넉넉하지도 못 한 상황에서 현금 지원 정책의 부담은 고스란히 우리 국민 모두가 짊어져야 할 부채가 될 것이란 것은 비단 필자만의 짧은 생각은 아닐 것이다.

지금 세계의 누리꾼 사이에서는 코로나19에 대처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한국은 위대한 국민의 나라’라는 칭찬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 한국 자원봉사자들이 활동 영상을 유튜브를 통해서 공유하면서다. 

세계 누리꾼들은 ‘한국은 항상 위대한 사람들을 가진 위대한 나라’, ‘역사적으로 국난을 극복하기 위해 뭉쳤던 나라’, ‘위기는 민중들에게 최선의 것과 최악의 것을 이끌어낸다. 위기가 끝났을 때 누가 놀라운 나라를 만들었는지 기억하자’라고 하면서 ‘한국을 기억하겠다’고 했다. 

무엇이 우리를 이렇게 위대하게 만드는가. 우리에게는 나눔의 문화, 참음의 문화, 극복의 문화가 있다. 그럴만한 능력이 있는 민족이다. 이 난국을 타개하는 데 국가가 우선해야 할 역할은 국민 스스로에게 용기와 자신감으로 함께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데 있는 것이지 금전 몇 푼 건네 주는 데 있지 않다. 그 지원은 국민의 자생 능력이 소진될 때 꺼내는 마지막 카드라야 한다. 왜 우리는 마지막 카드를 먼저 꺼내려 하는가. 

필자는 어느 민박집에 고용된 일용직 아줌마와 주인 사이에 나누던 대화를 기억한다. 달포 이상 비어있는 객실을 마주하며 “사장님, 봉급이 없어도 좋으니 손님이 있을 때까지 창문 여닫는 일이라도 열심히 시켜주세요”라며 손을 맞잡던 그들의 모습은 곧 이 난국을 극복하려는 우리들의 모습이어서 좋았다. 정부가 주는 돈을 마다할 백성은 없다. 그렇지만 그것은 달콤한 독이다.

제주일보 기자  kangm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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