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호 부친 의혹 희생자·유족 ‘채록’ 정부 보고서에도 미확인
송재호 부친 의혹 희생자·유족 ‘채록’ 정부 보고서에도 미확인
  • 고경호 기자
  • 승인 2020.03.17 1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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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선면 유족회 “근거 없는 비방·왜곡 4·3 상처 덧나게 할 뿐”

박희수 예비후보(무소속)가 제기한 송재호 예비후보(더불어민주당) 부친의 4·3 학살 가담 의혹에 대해 사실 확인을 한 당사자들이 관련 자료를 공개했다.
이는 박 예비후보가 지난 16일 기자회견을 열고 본지가 보도한 ‘송방식씨, 대청 단장 맞지만 희생 막아’ 기사(3월 16일자 2면 보도)와 관련해 취재에 응한 4·3 전문가들의 ‘객관성’을 문제 삼으며 자료를 제시하라는 요구에 따른 것이다.

▲희생자·유족 ‘채록’·당시 언론 보도 분석
김동만 4·3연구소 이사와 박찬식 전 제주학연구센터장이 17일 공개한 자료에 따르며 송 예비후보의 부친인 송방식씨는 표선면 대동청년단장을 역임했다.
두 학자가 공개한 자료들을 살펴보면 우선 제주신보(제주일보 전신)가 1947년 4월 30일 보도한 기사에 따르면 송방식씨는 같은 달 26일 ‘대한독립촉성전국총연맹’(독청) 표선리지부 결성대회에서 위원장으로 ‘피선’됐다.
독청은 김구와 이승만을 지지하는 20여개 단체의 청년들이 모여 1945년 11월 21일 결성됐다.
제민일보 4·3취재반이 발간한 ‘4·3은 말한다’ 1권에는 ‘1947년 10월 3일 대동청년단이 발족되면서 독청이 흡수 통합되었고 (송방식씨는) 1947년 10월 이후 표선면 대청단장이 됐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이에 대해 제주4·3연구소가 2008년 발간한 ‘제주4·3사건증언채록사업 증언채록집’ 중 강수영 할아버지(88)의 증언에 따르면 “시대적 분위기에서 (송방식씨가) 표선단장이 됐지만 친일파도 아닌 정당한 사람”이라고 밝혔다.
또 강 할아버지는 “그 때 삐라(전단) 뿌리는 사람들도 표선에 있었다. 송방식이라는 사람이 ‘군인가라’하면 군인가고 그래서 그 사람들도 살아났다. 그렇지 않으면 다 죽었을 것”이라며 “송방식 그 사람이 우리 표선리 살렸다”고 회상했다.
2018년 미국 의회에서 4·3 증언에 나섰던 오태경 할아버지(90)는 “(송방식씨는) 4·3 당시 악행을 하거나 나쁜 짓한 활동을 한 사실이 없다. 독청지부장을 한 것은 사실이나 군경과 함께 토벌 다닌 사실이 전혀 없다. 주변 사람들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다”고 증언했다.
현재 제주4·3희생자유족회 표선면지회장을 맡고 있는 안봉수씨(61) 역시 “가시리에서 자식과 부인 등 가족 12명이 희생돼 정신 나가 헤매는 아버지에게 (송방식씨는) 삶의 의지를 심어줘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준 은인 같은 분이다. 헐벗은 사람과 굶주린 사람에게 도움을 준 고마운 사람이라고 아버지에게 여러 차례 들어왔다”고 밝혔다.

▲정부 진상조사 보고서에도 의혹 내용 ‘전무’
박찬식 전 제주학연구센터장은 송방식씨에 대한 친일 행적과 주민 학살 가담 의혹에 대해 확인하기 위해 당시 보도된 동아일보·매일신보 등 중앙·지역 언론 보도 내용을 수집·분석하고,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발간한 친일인명사전도 확인했지만 제기된 의혹에 대한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정부가 직접 조사·발간한 진상조사 보고서 역시 마찬가지다.
국무총리(당시 고건)를 위원장으로 한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가 2004년에 발간한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는 물론 제주4·3평화재단이 4·3 희생자 1만4442명을 대상으로 다시 전수 조사해 지난 16일 발간한 ‘제주4‧3사건 추가 진상보고서’ 1권에도 송방식씨가 4·3 당시 표선면 주민들에 대한 집단 학살에 가담했다는 사실은 없다.
실제 ‘제주4‧3사건 추가 진상보고서’ 1권에는 4·3 당시 표선면에서 발생한 집단학살 사건의 가해자가 명시돼 있다.
표선백사장에서 주민 234명이 학살된 사건은 표선면사무소에 주둔하고 있던 제2연대 군인들에 의해 자행됐고, 92명이 희생당한 버들못의 경우 경찰이 총살 집행 후 민보단원들에게 죽창으로 사살 확인 작업을 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반면 조사 과정에서 대동청년단이 표선면 주민들을 집단학살하거나 여기에 가담했다는 내용은 확인되지 않았다.

표선면민들이 송방식씨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87년 6월 21일 표선생활체육관에 세운 공덕비.
표선면민들이 송방식씨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87년 6월 21일 표선생활체육관에 세운 공덕비.

▲4·3 유족들 “근거 없는 비방·왜곡 상처 덧나게 할 뿐”
제주4·3유족회 표선면지회는 17일 제주도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송방식씨와 관련한 의혹에 대해 “4·3에 대한 사실 왜곡과 비방에 대해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이날 유족들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4·3 당시 표선면 대동청년단장을 지낸 송방식씨에 대한 의혹은 금도를 벗어난 사실 왜곡”이라며 “표선면 유족들은 뜻을 모아 ‘잘못된 것에 침묵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죄인이다’라는 마음으로 기자회견을 열게 됐다”고 밝혔다.
이어 “송방식씨가 마치 대동청년단장 직책으로 수많은 사람을 죽인 가해자 또는 협조자로 인식되게 하는 의혹이 퍼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 내용을 근거로 일부 예비후보자들은 공식적인 발표를 통해 의혹을 재생산하기에 이르렀다”며 “유족들과 유족회원들은 지역 내 유족과 어르신들로부터 많은 사실을 청취함은 물론 증언 기록도 찾아봤지만 송방식씨가 주민 학살에 관여한 사실은 전혀 듣지도, 보지도, 찾지도 못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유족들은 “오히려 송방식씨가 마을 유지로서 표선면 주민들의 희생을 억지하려고 노력했을 뿐만 아니라 중산간 마을 주민들이 표선리에서 소개 생활을 할 때도 도움을 줬다는 증언을 들을 수 있을 뿐이었다”며 “더욱이 표선면 주민들은 1985년 송방식씨가 세상을 떠나면서 그 분의 은공을 기리고자 표선 주민들의 뜻을 모아 ‘표선면민장’을 치렀고 공덕비도 세웠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유포되고 있는 송방식씨에 대한 의혹은 일방적이다. 만약 학살에 관여한 증거가 있다면 우리도 알아야 하기에 이를 분명하게 알려주기 바란다”며 “그러나 거짓되고 근거 없는 왜곡과 비방이 계속되고 이를 선거 전략의 도구로 사용한다면 우리 유족회는 그 책임을 단호하게 물을 수밖에 없다”고 엄중히 경고했다.
또 유족들은 “암흑과 같았던 혼돈의 시대, 4·3의 와중에서도 경찰 내부에도 의인이 있었고 군인들 중에서 참 군인이 있었다. 심지어 서북청년단에도 양심적으로 활동한 사람들이 있었다”며 “제주의 아픈 상처를 보듬고 미래 평화의 섬을 건설해 나가야 할 현 시점에서 이러한 근거 없는 비방과 사실 왜곡은 상처를 덧나게 할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유족들은 사실 여부를 떠나 4·3이 정치적으로 논란이 되는 것에 대한 입장을 묻자 “선거 때마다 4·3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하려는 집단과 상대를 불리하게 하려는 집단이 꼭 나온다. 4·3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못 박았다.
특히 이번 의혹에 대한 사실 관계 확인 여부를 묻는 질문에는 “표선면에 총 10개의 마을이 있고 각 마을마다 2명의 이사가 있다”며 “이사들 모두 해당 마을 주민들에게 송방식씨에 대한 의혹이 사실인지 물어봤고, 지난 14일 한 자리에 모여 의견을 취합한 결과 학살에 가담했다는 증언은 나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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