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는 봄’…“진달래~”
‘침묵하는 봄’…“진달래~”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20.03.15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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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면 흰 구름이 한가로이 흐르고…. 여우 울음소리가 들리고 사슴의 모습도 종종 보였다. 온갖 꽃들이 그 자태를 뽐내고 수많은 새들이 날아다녔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가축들이 시름시름 앓다 죽어가고 멀쩡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사망했다. 지저귀던 새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사방은 정적만이 감돌았다.”
지구 최후 심판의 날을 연상케 하는 이 글은 미국의 해양생물학자인 레이첼 카슨 여사가 환경 파괴가 가져올 미래의 ‘환경 재앙’을 경고하며 지금으로부터 58년 전인 1962년에 쓴 ‘Silent Spring’의 한 대목이다.
환경 서적의 바이블이자 환경 운동의 단초를 제공한 것으로 평가되는 이 책은 우리나라에도 ‘침묵하는 봄’으로 번역·출판돼 있다.

▲이 책을 떠올린 것은 요즘 이른 바 ‘전염병 재앙’이라는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우리의 주위를 모두 변화시키고 있어서다.
코로나19도 일종의 ‘환경 재앙’이다.
카슨 여사의 글을 이렇게 달리 바꿔보면 올 봄 역시 영락없이 ‘침묵하는 봄’이다.
“봄이면 한라산 자락에 노루들이 뛰놀고…. 진달래 철쭉이 그 자태를 뽐내고 수많은 관광객들로 만산홍해(滿山紅海)를 이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모든 것이 변하기 시작했다. 잘 나가던 가게들이 문을 닫고 사람들은 모두 복면 마스크를 했는데 TV에는 연일 사망자수가 발표된다. 거리의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지 사방은 정적만 감돌고 있다….”
유치원과 학교, 공연장 등 대중 이용 시설들이 폐쇄됐다. 제주국제공항의 국제선 항공기 운항도 취항 51년 만에 처음으로 모두 멈춰 섰다.
 
▲시절이 하수상해도 계절의 변화는 어김없는 모양이다.
진달래 화신(花信)이 전해졌다. 지난 3일 제주에서 진달래가 평년(3월 31일)보다 28일이나 빨리 개화를 했다. 기상청이 관측을 시작한 1973년 이래 가장 빠른 기록이라고 한다.
진달래 꽃말은 ‘사랑의 기쁨’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해맑은 이 분홍빛 봄꽃을 보면 고향이 생각난다고 한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소월의 약산 ‘진달래꽃’뿐만이 아니다. 전남 여수 사람들은 영취산 진달래가 제일이라 하고 강화도 사람들은 고려산 진달래가 최고라지만 제주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어김없이 한라산 철쭉이 제일이다.
철쭉꽃 축제가 없다고 꽃이 피지 않는 건 아니다. 지금 한라산 철쭉(진달래 일종)은 “귀촉 귀촉(歸蜀, 고향 촉나라로 돌아가고파)” 우는 두견새가 토해낸 핏물처럼 온 산을 분홍빛으로 물들이고 있을 것이다.

▲진달래꽃으로 전을 부쳐 먹으며 읊던 ‘화전가(花煎歌)’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아이야 물어보자/ 꽃 중에 무슨 꽃이 색도 좋고 맛도 좋아 만화(萬花) 중에 제일이냐.’ 진달래 꽃이 꽃 중의 꽃이라는 노래다.
진달래 꽃만 그리는 김정수 화백은 이런 얘기를 한다. 중학생 시절, 어머니가 “많이 아프냐 힘들고 어려워도 참고 기다리면 너도 언젠가는 진달래꽃처럼 환하게 필 거다”며 뒷동산 진달래의 한 웅큼을 하늘로 뿌렸던 추억이다.
요즘은 하도 정신이 없어서 진달래가 가을에도 핀다. 올해 진달래가 빨리 핀 까닭은 이런 말을 하고 싶어서일 것이다. ‘침묵하는 봄’에 많이 아프고 힘들고 어렵지만 ‘참고 기다리면’ 환하게 피어날 날이 올 거라고.
진달래 꽃소식이 좌절에 빠진 모든 이들에게 소생의 의미를 되새기는 희망이 됐으면 좋겠다. 이 난리가 좀 풀리면 정다운 사람들끼리 만나 술 한 잔 건배사로 “진달래(진실하고 달콤한 내일을 위하여)~”를 외칠 약속도 하면서.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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