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기생충
우리 모두 기생충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3.15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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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환 제주지역사회교육협의회 부회장

우리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최고상들을 휩쓸었다. 최고상을 받은 데에는 수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는 계층 간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는 사회 문제에 전 세계가 공감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기생충’이 개봉되고 난 후 영화를 먼저 보고 온 딸이 부자는 착하게, 가난한 사람은 나쁘게 그렸다며 불만을 토로하던 기억이 있다. 당시 필자도 영화 제목부터가 부정적인 느낌이 들었고 국제영화제 수상작이라고 하니 심오하기만 하고 재미나 감동 따위와는 거리가 멀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영화를 보는 동안 필자는 ‘박 사장’도 됐다가 ‘기택’이 되기도 했다. 필자 스스로를 중산층이라 여기고 있었고 소위 잘 나가는 사람으로 박 사장처럼 상류층으로 분류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던 듯하다. 

결정적으로 박 사장이 착했다. 평소 필자의 생각과 기준으로는 가난한 사람 편에 서서 전적으로 기택 가족에 공감해야 했지만 기택 가족이 나빴다. 

그러면서도 필자는 아직 지하실에 갇혀서 외부 세계로 모스 부호로 신호를 보내고 있는 기택이 기우에 의해서 구출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영화 ‘기생충’은 우리 사회에 적잖은 질문을 던진다. 

기우가 돈을 많이 벌어서 기택을 구출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그 답은 우리 사회가 기우에게 줄 수 있는 희망 사다리가 얼마나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안타깝게도 우리의 현실이 주는 답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영화 속 기택은 치킨집을 하다 망하고 대만 카스테라 프렌차이즈로 남은 재산 다 날리고 대리운전 기사로 사회 밑바닥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름 노력한 어찌 보면 우리 시대의 평범한 가장이다. 

반 지하 기택의 집에 걸려있는 사자성어 안분지족(安分知足,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 분수를 지키며 만족한다)은 기택이 처한 현실과 그 마음을 대변한다.

“아들아, 넌 다 계획이 있구나.”

아들을 대견스럽게 바라보며 기택이 한 말이다. 계획대로 어느 하나 풀리지 않았던 삶, 바닥을 넘어 지하까지 추락한 기택은 아들에게서 다시 희망을 기대한다. 

계획을 세우면 실패하지 않을까? 기택의 실패와 가난은 무계획적인 삶 때문도 노력을 안 해서도 아니다. 시대를 잘못 만난 탓이었다.

이는 아들 기우뿐만 아니라 우리의 미래인 아들 세대들이 자신의 삶에 계획을 세우고 세운 계획대로 어느 정도 이루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사회의 구조적 문제가 빨리 해소되기를 바라는 봉준호 감독의 메시지다. 

삶을 달관한 것처럼 보였던 기택이 갑자기 박 사장의 가슴에 칼을 꽂았다. 가장 강렬한 장면이었다. 필자에게 인디언 복장을 한 기택은 백인들에게 삶의 터전을 빼앗긴 아메리카 인디언의 복수를 대신하는 듯했고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희생당하고 있는 민중을 상징하는 듯했다.

기택이 한순간에 박 사장을 죽인 이유는 냄새가 난다는 말 한 마디가 전부다. 중산층의 삶에서 하류층으로 전락하는 동안 세상의 온갖 쓴맛을 다 본 기택이었다. 그런 그가 부자의 종노릇은 달게 하면서도 자신이 하류층임을 각인하는 그 말은 참아내지 못 했다.

일부 보수논객은 영화 ‘기생충’을 사회주의 프로파간다라고도 하고 심하게는 좌파 선동 영화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기생충’은 박 사장 가족을 착한 가족으로 등장시키면서 가진 자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 자본주의 문제의 본질인 빈부 격차에 대해서만 주목하게 했다. 

‘기생충’의 결말은 부자인 박 사장은 물론 박 사장에게 기생했던 기택 가족과 문광 부부 모두 파국을 맞는다. 

박 사장이 기생관계를 몰랐다면 또는 알아도 모른 척 두 가족을 공생관계로 삼았다면 어떠했을까? 

그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우리 사회 현실이 그런 것처럼. 어쩌면 우리 모두는 더불어 공생하는 서로에게는 기생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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