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의 행정, 상수의 행정
하수의 행정, 상수의 행정
  • 정흥남 논설실장
  • 승인 2015.11.24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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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전 쯤으로 기억된다. 기자가 제주도청을 출입하던 당시 제주도 한 산하기관이 물품을 사들이는 과정에 잡음이 일었다. 물품 구매경쟁에서 탈락한 업체가 끈질기게 물품구매 절차를 문제 삼고 늘어졌다. 제주도 산하기관은 ‘문제없다’고 무대응으로 맞섰다. 일부 언론이 이 문제를 다루기 시작했고, 급기야 제주도 감사부서까지 물품구매과정을 조사했다. 조사 결과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결론났다. 그런데도 이를 둘러싼 논란이 이어지자 이를 보다 못한 도지사가 “법적으로 맞는 것만 하는 게 행정이 아니다. 그러면 누가 행정을 못하겠나”라며 해당 기관을 질책했고 급기야 해당 기관 관계자들이 탈락한 업체와 ‘협의’를 통해 문제를 봉합했다.

성산읍 지역에 들어서는 제주 제2공항 건설사업과 관련, 지역 민심이 들끓고 있다. 주민들의 반발은 이 사업이 발표되는 순간부터 충분히 예견된 것이다. 조상 대대로 살아온 삶의 터전에서 어느 날 갑자기 나가라고 한다면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주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해당 지역 주민들이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았다는 말이 결코 과장된 표현은 아니다.

이 문제를 풀어야 할 제주도가 난감하다. 벌써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수차례 이곳을 방문, 주민들을 만나고 있지만 현재로써는 주민들의 불만과 불안을 잠재우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사실 제 2공항건설 예정지를 조사, 발표하면서 해당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사전에 듣지 못한 것은 행정이 잘못이다. 현실적으로 공항 예정지 선정이라는 민감한, 나아가 고도의 정책적 판단 때문에 ‘밀실추진’이 불가피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행정 내부의 문제다. 이를 주민들에게까지 ‘그대로 받아들이라’고 하는 것은 억지다. 절차와 합의를 존중하는 민주사회에선 더더욱 그렇다. 특히 그 대상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수용되고, 고향을 등져야 하는 주민들이라면 더 그렇다.

결국, 이제 과제는 제주도가 갈등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느냐는 것이다. 현재로써는 주민들을 만나 대화하고 설득하고 주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비전을 제시하는 방법밖에 없어 보인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면서 2공항 건설의 당위성만을 부각해선 얽히고설킨 문제를 풀 수 없다. 주민들이 원하고 희망하는 세세한 모든 것들을 찾아 챙겨야 한다. 이 과정에서 주민들이 수용할 수 있는 방안들을 지속해서 제시해야 한다.

행정이 ‘법대로’만을 고집하다가 풀 수 있는 문제도 풀 수 없는 경우를 왕왕 본다. 이 ‘법대로’는 말 그대로 공무원들의 복지부동과 보신주의를 불러온다. 규정이 허용하고 지정된 일만 한다면 이는 전형적인 ‘하수의 행정’이다. 위법행위가 아니라면 말 그대로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 위법의 턱밑까지 오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마다해선 안 된다. 또 마지막 순간 실낱같이 좁은 틈새라도 비집고 들어가 숨어있던 ‘묘수’을 찾아내 판을 바꾸는 행정이 ‘상수의 행정’이다.

최근 화제의 책으로, 바둑을 두는 사람이건 두지 못하는 사람이건 한두 번쯤 읽어 보았을 ‘조훈현 고수의 생각법’에서 국수 조훈현은 ‘복기’의 필요성을 줄 곧 강조한다.

바둑에서 복기는 '두었던 바둑을 처음부터 다시 두는 것'을 뜻한다. 조 국수는 이 책에서 “진심으로 이기고 싶다면 이기는 사람에게 고개를 숙이고 배워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미 제주도는 강정마을에서 많은 것을 깨쳤다. 비록 강정마을은 지금도 ‘진행 중’이지만. 진심으로 문제를 풀고 싶다면 강정마을의 경우를 거듭 거듭 ‘고개 숙이고’ 배워야 한다. 제 2공항이 제주에 기회인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위기도 그 기회를 뒤쫓아 왔다. 기회와 위기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로, 말 그대로 종이 한 장 차이다. 원희룡 제주도정이 지금껏 겪어 보지 못한 갈등해결의 시험대에 올랐다. 기회는 기회로 이어가고, 위기도 기회로 돌려야 한다. 그 답을 찾는 건 제주도정의 몫이다.

정흥남 논설실장  jh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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