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영혼과 보낸 나날…황량한 고요의 땅과 작별
순수한 영혼과 보낸 나날…황량한 고요의 땅과 작별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3.12 1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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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은둔의 왕국 무스탕을 가다(18)
포카라행 비행기가 비날씨로 결항돼 마음은 답답했지만 밤새 내린 비로 곳곳에 폭포가 만들어져 눈길을 사로잡았다.
포카라행 비행기가 비날씨로 결항돼 마음은 답답했지만 밤새 내린 비로 곳곳에 폭포가 만들어져 눈길을 사로잡았다.

■ 트레커들의 오아시스 ‘좀솜’

묵티나트는 어떤 곳이기에 ‘깨달음의 땅’이라고 불릴까 하고 많은 기대를 했었으나 신앙심이 부족한 탓인지 신령스러운 느낌을 받지는 못 했습니다. 

일행들은 산 중턱에 있는 티벳 불교사원을 찾아간다고 길을 나섰지만 저는 어제 무리했던 여파로 무릎이 시원치 못 해 중턱에서 그만뒀습니다. 

지금껏 어느 여행에서도 중간에 포기한 적이 없었는데…. 왜 포기했는지는 돌이켜 보니 무스탕을 돌아보며 마주했던 여러 불교 유적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묵티나트는 방문객이 많아서 그런지 신축 중인 호텔도 몇 개 눈에 띕니다. 힌두교 신자로 보이는 인도 사람들이 말을 타고 줄지어 다니고 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힌두교 승려도 곳곳에 보여 과연 이곳이 성지(聖地)이기는 하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이번 무스탕 트레킹이 어느 덧 끝을 앞두고 있습니다. 깨달음의 땅, 묵티나트를 떠나 이제 좀솜으로 향합니다. 좀솜으로 가는 차 속에서 9일간 지나왔던 장소와 그 곳에서 만났던 사람들을 떠 올려봅니다. ‘아~이번 무스탕 트레킹은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줬다.’

차 창 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무스탕의 풍경이 또 색다릅니다. 좀솜에 가까워 질수록 산에는 나무가 많고 지형도 이전과는 다른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덜컹거리는 차 속에서 졸다 보니 어느 새 좀솜에 도착했습니다. 좀솜은 자그마한 도시로 우리 일행이 머문 숙소에서는 좀솜공항 활주로를 훤히 내려다 볼 수 있었습니다. 일행들은 시원한 맥주를 즐기며 그동안 무탈하게 일정을 소화한 것을 서로 축하합니다. 

좀솜은 ‘트레커들의 오아시스’라고 한다길래 가이드에게 뭐가 있어 그렇게 불리느냐 물어봤더니 “온통 산으로 둘러 쌓여 특별히 가볼만 한 곳은 없다”고 합니다. “오래 전 가와구치 에카이(河口彗海)라는 일본인 승려가 무스탕을 거쳐 티벳에 들어갔던 기록과 사진이 전시된 곳이 있다는데 그 곳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가이드는 자세히 알 수 없지만 오늘은 찾아갈 시간이 없을 것 같답니다. 더 욕심을 부렸다가는 싫은 소리를 들을 것 같아 더는 묻지 않았습니다. 

좀솜마을에서 만난 주민들 모습.

‘모비드’라는 예명을 가진 일행 한 분이 이번 여행이 너무 즐거웠다며 저녁에 양 한 마리를 잡아와 모처럼 모두가 만찬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해가 질 무렵 눈 덮인 산이 시원스럽게 보여 저녁에 별 사진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아 옥상에 카메라를 설치하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날이 어두워지자 갑자기 구름이 덮이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한 자료에서 무스탕의 밤은 별들이 찬란하다는 내용을 보고 무거운 삼각대까지 챙겨왔는데 한 번도 사용 못 했습니다. ‘내일은 비가 오지 말아야 비행기를 탈 수 있을 텐데’ 하고 일행 모두가 걱정하며 잠을 청했습니다.

■ 이국에서 맞은 생일

아침이 되자 유리창을 두드리는 빗방울 소리가 요란합니다. 밖을 내다 보니 사방이 안개로 뒤덮여 있고 비가 주륵주륵 내립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빗방울은 더 굵어지기만 하더니 결국 비행기가 결항됐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어쩔 수 없이 서둘러 포카라로 가는 차량을 알아보고 다시 멀고도 힘든 길을 나서야 했습니다. 포카라까지는 12시간이 걸린다는데 사정에 따라 15시간 이상도 각오해야 한다고 하니 한숨이 나왔습니다. 좀솜에 올 때도 비행기가 결항돼 험한 길을 밤새 달려왔기에 앞으로 갈 길도 짐작이 됩니다. 

아니나 다를까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차는 멈춰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차 바퀴가 반쯤 잠길만큼 길이 엉망이었기 때문입니다. 오르고 내려가는 차들이 서로 엉켜 꼼짝달싹 못 하고 한 참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이러다가 또 차에서 밤을 지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됐습니다. 아예 눈이라도 좀 붙이자고 잠을 청해보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차 천장에 머리를 수없이 부딪히며 가기를 또 얼마, 이번에는 도로 공사 현장이 허물어져 발이 묶였습니다. 날은 저물어가고 갈 길은 멀기만 한데 저녁 먹기는 글렀다는 일행들의 한숨 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어둠 속에서 산 고비를 돌고 돌아 마침내 포카라에 도착해 보니 식당들은 이미 문을 닫았습니다.

한 곳을 찾아 사정사정하니 겨우 저녁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식사 중 후배 양성협이 케이크를 들고 옵니다. 오늘이 제 생일(음력으로는 멀었는데)이 아니냐며 그 어려움 속에서도 파티를 열어줍니다. 멀고 먼 히말라야 산기슭에서 뜻하지 않게 생일 파티를 선물 받아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모두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덕택에 이번 무스탕 트레킹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포카라를 떠나 멀리 깔리간다키강을 바라보며 “안녕~”하고 작별 인사를 보냅니다.  <끝>

※ 다음 회부터는 또 다른 오지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차를 타고 포카라로 향하는 도중 들른 한 마을에서 아낙네들이 모여 춤을 추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차를 타고 포카라로 향하는 도중 들른 한 마을에서 아낙네들이 모여 춤을 추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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