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다음 또 겨울
겨울 다음 또 겨울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3.10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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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태 시인·다층 편집주간

봄이 오는 길목에서 온 나라가 시름시름 앓고 있다. 봄의 문턱에 걸린 채 모든 것이 정지해버린 듯, 영화 상영 중 화면이 정지돼버린 듯 움직이지를 않고 있다. 

날씨가 풀리고 해가 길어지고 꽃이 피어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봄은 멀기만 한 듯하다. 아니 봄이 오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다. 근심 걱정이 나라를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모든 뉴스가 역병(疫病)에 관한 얘기뿐이다. 대화의 주된 화제도 마찬가지다. 

다른 지역에 사는 시인과의 통화에서 들었던 말이다. 자녀와 손자들이 ‘안녕히 주무셨어요?’하는 인사가 예사로 들리지 않더라는 말은 오늘 우리의 현실을 바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밤새 안 돌아가시고 살아 있었느냐는 말로 들리더라는 말에서는 더 마음이 아려온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북방의 흉노족에 끌려간 중국 한나라 때 궁녀 왕소군(王昭君)의 심경을 헤아리며 측천무후의 좌사(左史)였던 동방규가 쓴 ‘소군원삼수’(昭軍怨三首)에 나오는 구절이다.

오랑캐 땅에는 꽃도 풀도 없어(胡地無花草)
봄이 왔으되 봄 같지 않구나(春來不似春)
나도 모르게 옷 띠가 느슨해졌나니(自然衣帶緩)
몸이 약해진 때문만은 아니리니(非是爲腰身)

분명히 계절은 봄이 찾아와 꽃이 피고 새싹이 돋아나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아직도 꽁꽁 얼어붙어 풀리지를 않는다. 

추위야 옷을 껴입으면 그만이고 보일러를 켜면 뜨거운 물이 철철 흐르는 세상이니 몸이 추운 것은 얼마든지 견딜 수 있다. 하지만 역병(疫病)에 고통받는 수많은 이들을 생각하면 마음의 추위가 가시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안타까운 사연들이 들려오기도 하지만 어려움을 나누고자 하는 수많은 사람의 미담이 들려오기도 한다. 

그러니 여전히 정치권에서는 ‘네 탓’ 공방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뒷전인가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누구 하나를 희생양 삼아 ‘탓’을 해야 자기 책임을 모면할 수 있다는 회피 본능인지 모르겠으나 중요한 것은 현재 상황을 타개하고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을 위한 대책을 우선으로 모색해 주면 좋겠다. 

그런데도 이 혼란을 돈벌이의 기회쯤으로 생각하는 악덕 상혼이 판을 치고 있다는 반갑지 않은 소식도 들려온다. 

마스크 한 장을 사기 위해 신분증을 들고 몇 시간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안타까운 모습에 가슴이 쓰리다. 그들의 모습을 보면 국민의 불안이 얼마나 큰가 짐작할 수도 있겠다. 

이런 게 사람살이인가 싶다가도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분노가 치민다. 아무리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는 냉정한 것이 인간이고 나만 아니면 된다는 게 인간의 습성이라고 하지만 타인의 고통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고운 말이 나오지를 않는다.

이런 시국을 당하니 봄을 누리고 느끼겠다는 생각만으로 죄스러워진다. 

언제면 이 역병이 잦아들지 아직은 기약도 없다. 나날이 기승을 부리는 바이러스를 피해 어디로 벗어날 곳도 없다. 

어디인들 안전한 곳이 있으랴 싶기도 하다.

현재로서 각자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통을 겪고 있는 분들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응원하는 것이고 타인에 대한 배려의 근본으로 자기 자신의 위생 관리를 철저히 하는 것이며 나부터 조심하는 태도가 중요하리라 생각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제아무리 기승을 부리는 바이러스인지 역병인지 하는 이 녀석도 조만간 잦아들고 우리의 기억 속에서 사라질 것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다음에 새로운 겨울을 맞은 우리들의 가슴에 얼른 진정 다사로운 봄이 깃들기를 기다린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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