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원히 잊지 못 할 트레킹
18세기 네팔에 자치권을 뺏긴 후 ‘금단의 땅’이 된 무스탕, 티벳보다 더 티벳다운 문화와 풍습을 간직한 은둔의 왕국. 이번 트레킹 기간 동안 마주한 이 곳 사람들의 순수함과 신비스러운 자연은 일행 모두에게 영원히 잊지 못 할 추억을 선사했습니다.
1992년에 이르러서야 외국인에게 문을 연 마지막 은둔의 땅, 원시의 척박한 대지와 거센 바람에 맞서 화석처럼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시간을 거슬러 가는 듯한 착각이 들었습니다.
진정 ‘살아있는 박물관’임에 틀림없습니다. 상상하지도 못 했던 신비스러움을 느끼고 돌아온 우리 일행은 모여앉아 “영원히 잊지 못 할 것 같다”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예상했던 8시간을 훌쩍 넘어 10시간을 걸었지만 피곤함보다는 지나왔던 곳의 모습이 아른거린다고 서로 입을 모읍니다.
일행들은 고생했다기보다는 너무 행복했다는 마음을 갖게 해 주는 땅, 무스탕을 걸으며 고산 지대에 울려 퍼지는 풍부한 역사적 메아리를 들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또 하루가 지나가는 게 아쉬운 듯 서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내일 일정을 위해 일찍 잠을 청했지만 만신창이가 된 몸에도 정신만은 말똥말똥합니다. 그동안 지나온 길에서 만났던 사람들 모습이 아른거려 잠을 이룰 수 없습니다. 퉁퉁 부어오른 무릎이 쓰리고 아파서 끙끙거렸지만 속으로 가족에게 ‘이렇게 힘든 일을 해냈다’고 소리치고 싶습니다. 꿈속에서라도 이런 마음이 전해졌으면 합니다.
어느 덧 아침, 일어나려고 몸을 움직이는데 꼼짝도 할 수 없습니다. 몸 이곳저곳을 주무르고 나서야 겨우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일행들은 벌써 나와 서로의 몸 상태를 묻고 있습니다.
식탁에 모여앉아 어제 다 못 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고생은 심했지만 이번 코스만큼은 ‘황량한 아름다움의 극치’였다고 한 목소리를 냅니다. 9일간의 트레킹이 힘들었던 만큼 소득도 컸다는 것입니다.
주방팀이 그동안 고생했다며 특별식을 만들어줘서 아침 식사도 즐겁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일정은 묵티나트입니다. 이전 트레킹 도중 날이 어두워져 들러보지 못 한 곳입니다.
비니(Beeni)에서 북쪽으로 가면 히말레(Him-a-leh)의 한 부분인 묵티나트(또는 스리 묵티나트)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 곳은 건덕(Gunduck)강에서 반 마일 정도 떨어져 있으며 신성시하는 돌인 살레그라미(Salegrami)에서 나온 이름이랍니다.
살레그라미는 특별히 그 지역 강바닥에서 많이 나오고 강의 발원지는 묵티나트의 북쪽에 있는 무스탕이며 까그베니에서 멀지 않답니다.
무스탕에 오기 전 여러 자료를 뒤적거리며 현지에서 확인해보자고 생각했지만 막상 현지에 도착하면 어려움이 많습니다. 신성한 돌 살레그라미를 보고 싶었지만 아는 사람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덜컹거리는 차 안에선 어제 넘어온 코스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밖을 보니 우리와 함께 트레킹을 했던 프랑스팀이 걷고 있습니다. 현지가이드 말에 의하면 저 팀은 좀솜까지 걸어간다고 합니다.
어느 새 규라라는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규모가 제법 큰 마을로 커다란 사원도 있습니다. 불교 학교가 있는지 수업을 마친 듯한 동자승들이 밖으로 나와 놀고 있습니다. 마을을 쭉 돌아보니 돌담을 쌓은 집들이 전통 티벳 가옥 형태로 서로 연결돼 있습니다. 로만탕에서 본 주택 구조와 비슷한데 마치 ‘한 지붕 여러 가족’ 같은 느낌입니다.
■ 무스탕의 또 다른 모습 ‘묵티나트’
이제 드디어 ‘깨달음의 땅’이라 불리는 묵티나트로 향합니다. 그런데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게 덜컹거리던 차가 갑자기 조용해졌기 때문입니다. 어찌 된 일인가 했더니 차가 포장도로에 들어섰습니다.
포카라시 중심 도로처럼 포장된 이 도로가 ‘깨달음의 땅’, 티벳 불교 사원과 힌두교 사원이 사이좋게 공존하는 성지로 가는 길이랍니다. 산길을 돌고 돌아 도착한 마을은 작은 규모인 듯 보였으나 안으로 들어서니 큰 호텔까지 있는 도시입니다. 언덕 위에는 타루초(불교 경전이 적힌 깃발)가 길게 걸렸고 조금 더 올라가자 높은 산 아래 거대한 불상과 수많은 타초루가 걸린 묵티나트 사원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 곳은 불교 사원과 힌두교 사원이 한데 모여 있어 그런지 인도에서 온 듯한 힌두교 신자들이 말을 타고 줄지어 오고 있습니다. 묵티나트 근처 루브라에는 뵌교(본교·티벳의 토착 종교) 사원도 있고 민간에서는 정령신앙도 널리 신봉되는 특별한 지역이라고 합니다. 거리에 힌두교 성자가 많아서 그런지 무스탕의 또 다른 모습을 보는 것 같습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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