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참으로 만난다는 것
사람이 사람을 참으로 만난다는 것
  • 제주일보
  • 승인 2020.03.0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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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숙 제주지방법원 가사상담 위원·백록통합상담센터 공동소장

법원 관계자로부터 이달 말쯤 열릴 예정인 가사재판장 연수에서 심리파트를 맡아 강의해 달라는 의뢰를 받았다.

2008년부터 법원에서 가사상담 업무를 쭉 맡고 있어 아마도 현장 경험 이야기를 들려 달라는 뜻인 듯하다. 이런 강의 의뢰는 올해로 10여 년째 계속되지만 해마다 강의 준비에 유난히 시간이 많이 들어 의뢰 전화를 받으면 반갑기도 하고 한 편으론 ‘또 고생하겠구나’하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법률 전문가인 판사를 대상으로 가사재판 당사자들의 심리 상태를 설명하고 가족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떠한 문제를 살펴봐야 한다고 안내하는 시간이 늘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한 편으로 생각해 보면 가사재판은 법률적인 지식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어 상담, 심리 전문가의 이야기도 꼭 들어야 하는 분야인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서 판사도 아무런 준비 없이 재판하지 않고 필자 같은 심리 전문가의 강의도 들으면서 철저하게 준비하는 듯해 당사자들이 판사를 믿고 재판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가사재판 업무를 맡는 판사들은 부부가 이혼하는 상황이 될 때 법률적인 판단만으로 해결하려 하지 않고 가족의 문제, 특히 자녀 양육과 관련해서는 조정 전문가나 심리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해결하려는 시도를 많이 하고 있다.

부부가 이혼할 때 표면적인 이유만으로 이혼 여부, 자녀 양육 여부 등을 해결하려 하다 보면 자칫 간과하는 부분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겸허한 자세와 꼼꼼한 접근에 감탄하기도 하며 더 튼실한 정보를 제공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앞서기도 했다.

강의 의뢰를 받은 초반에는 필자의 전문 분야인 부모 이혼을 경험하는 자녀의 심리상태와 이 때 자녀가 받았을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에 대해 알리는 데 주력했다. 이후 법원에서 가사상담 경력이 쌓이면서 자녀의 건강한 성장 도모에는 이혼을 선택하는 부부, 부모의 심리를 잘 헤아려야 하기에 부부 심리와 갈등 해결 방법에 대해 강의했다. 2시간 남짓의 강의를 준비하며 다시 들춰본 참고 도서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이혼’이라는 사건을 겪는 부부와 자녀를 법원에서 의뢰한 가사상담이라는 현장에서 만나다 보면 원고와 피고, 사건 본인이라는 법률적인 명칭으로 먼저 접하게 된다. 

하지만 전화를 걸어 상담 시간을 예약하고 한 사람씩 참 만남의 시간을 갖다 보면 그 당사자들은 저마다 고유한 관계 속에서 다양한 경험을 해 나가는 오롯한 존재들임을 시간이 지날수록 실감하게 된다. 비슷하기도 하지만 실상 그 어떤 가족도, 개인도 똑같은 무게의 이혼을 마주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들이 들려주는 모든 가락의 멜로디는 각기 다 고유했다.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를 유형 짓고 안내하기 위해 강의라는 그릇에 담아낼 때 항상 필자의 능력이 모자란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해마다 강의가 끝나고 나면 ‘혹시 다음 해에도 강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좀 더 많은 이야기, 정확한 이야기를 담아내야지’하는 마음을 갖곤 했다.

그 마음은 올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지금 상담 현장에서 만나는 이들과 함께하며 서로가 섞이며 이해하고 공감했던 그 순간의 이야기 자체로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협의이혼을 결심하고 미성년 자녀를 위한 자녀 양육 안내 시간에 나란히 앉아 필자와 눈을 맞추던 부부. 10여 년 연애 끝에 결혼했지만 예전의 그 사람이 아니라며 끝내 재판이혼을 선택했고 자녀 양육만은 포기할 수 없다며 서로를 향해 불같은 분노를 내뿜던 부부. 이혼 후 자녀 양육을 못 해 늘 부채감을 안고 살다가 청소년기가 돼 함께 살겠다며 찾아온 둘째 아이를 친권, 양육권을 변경해서라도 키우고 싶은데 법원에서 둘째와 셋째의 분리 양육이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전문가와 상의해 보라고 했다며 찾아온 엄마의 이야기 등….

이혼, 이혼 후 자녀 양육과 관련해 법원을 찾아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상황을 하나의 법률적인 사건이라고만 여겨 법적 잣대만 들이대기보다는 ‘중요한 인생 변환기에 법원의 역할에 따라 전혀 다른 길로 갈 수 있다’라는 마음으로 심리 전문가와 함께 가족의 문제를 해결하는 법원의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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