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의 신성함
생명의 신성함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3.03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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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태용 수필가

경자년(庚子年)의 봄이 성큼 다가왔다. 새로운 생명들이 꿈틀대고 있다. 햇살의 온기를 머금은 매화는 벌써 꽃망울을 터트렸다. 바람도 부드럽고 새들도 서로 화합하며 재잘거린다. 생명의 신성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하지만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면서 국내는 물론 전세계인들을 불안으로 떨게 하는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감염자가 확산되면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더 이상 피해 없기를 고대하면서 이 봄과 함께 감염자들의 빠른 회복과 쾌유를 바랄뿐이다.

내 지쳤던 심신도 신선한 봄의 향기에 젖어들었다. 내가 자주 찾았던 한라산 영곡(靈谷)을 떠올려 본다. 층을 이룬 묏부리들이 둘러싸서 구슬 병풍을 이룬 곳, 꼭대기에 올라 남쪽 바다를 굽어 살펴보면 한결같이 만리(萬里)가 푸르게 보이는 곳, 나는 그곳을 찾을 때마다 그야말로 하늘에 통하는 신선들의 거처지라고 생각하곤 한다. 바위 봉우리들이 물에 씻기어 옥비녀를 깔아 꽂은 듯하고, 깊숙한 골은 으슥하여 또한 누가 봐도 가경(佳境)이라고 생각하게 한다. 그곳에도 이제 새로운 생명들이 신성함으로 태어나고 있으리라.

산은 산을 오르는 사람들에게 영원한 고향일 게다. 철따라 바뀌는 아름다움과 살아 숨쉬는 흙과 풀 향기, 가는 곳마다 탁 트인 전망은 가슴을 쓸어내린다.

한라산은 오래 전, 백여 차례에 걸쳐 화산의 분출과 융기에 의해서 비교적 원지형이 생생하게 노출된 특징을 갖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아름다운 절경을 만드는 요인이 되었지 싶다.

한반도 민족의 영산으로 수많은 전설과 비밀이 숨겨져 있는 한라산. 1800여 종에 이르는 식물을 키워내고, 3300여 종의 동물·곤충을 끌어안고 묵묵하게 젖먹이며 역할을 다하고 있다. 경치 또한 어떠한가. 백록담 화구백의 군상은 한마디로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얼마 없으면 굽이굽이마다 흐드러지게 피어나게 될 진달래는 우리네 얼굴을 환하게 만들어 줄뿐 아니라 동심으로 돌아가게 한다. 오백나한이라고 할까? 오백장군이라 할까? 우뚝우뚝 서있는 500여 개의 화석(火石)은 보는 이로 하여금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오직 자식만을 위했던 어머니를 생각하게 하고 어머니에게 죄를 지어 슬피 울다 돌이 되고는 그때 뿌려진 눈물자국마다 피어나는 꽃 산철쭉을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철쭉꽃이 피기 시작할 때까지는 한라산도 소복을 벗지 않고 골짜기마다 하얀 눈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전설을 생각하면 마음이 숙연해 진다. 정상 가까이 운해(雲海)는 그야말로 신비롭다고 표현하고 싶다. 비행기 안에서나 볼 수 있는 그 이상의 풍경이다. 구름안개와 여명(黎明)은 금방이라도 신이 나타날 것만 같은 생각에 등이 오싹해진다.

이제 봄이 가고 여름이 오면 언제나 그렇듯 성숙해진 숲들이 우리의 그늘이 돼 줄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곱게 물들인 다음 계절을 생각하면 벌써 마음은 설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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