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旣視感)’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旣視感)’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20.03.01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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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코로나19’로 생사기로다.
공포를 키우는 출처 불명의 유언비어(流言蜚語)는 사회를 마비시켰다. 하루에도 몇 번씩 SNS를 보며 깜짝깜짝 혼비백산하는 건 일과다. 정부와 제주특별자치도는 만연한 가짜 뉴스를 차단하기 위해 전전긍긍이다.
가짜 뉴스는 한 마디로 유언비어다.
유언비어는 사회 불안을 먹고 자란다. 조선왕조실록을 읽어내려 가다보면 민심이 흉흉해졌을 때에 공통적인 현상이 유언비어 난무다.
하지만 21세기 한국. 자유 언론의 시대에도 유언비어가 난무하는 건 절대 정상이 아니다. 뿌리도 잎도 없는 유언비어가 이 사회 불안을 먹고 봄날 개구리 튀어나오듯 횡행하고 일파만파 커지고있으니 황망하다.
이 것도 일종의 ‘문화지체(Cultural lag)’ 현상일까.

▲미국의 사회학자 W.F 오그번(Ogburn)은 급속하게 발전하는 기술과 그에 부응하는 문화 간의 격차를 일컬어 ‘문화지체 현상’이라고 지칭했다.
물질적인 문화와 정신적인 문화 간에는 변화 속도의 차이가 발생하는데 속도의 차이에 의한 과도기적 혼란이 바로 문화지체 현상이라고 했다. 가령 차량의 수는 갈수록 늘어나지만 교통질서의식이나 건전한 교통문화가 정착되지 않는다거나 에너지 소비량은 증가하지만 에너지 소비 문화나 환경의 인식은 뒤처진다거나 하는 것들이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으로 의료수준이 최고 정상급이지만 정치논리로 ‘코로나19’ 문제를 제단하는 것, 인터넷 환경은 발전하는데 익명성을 무기로 하는 저급한 욕설이나 사이버 테러가 만연하는 현상도 같은 맥락이다.
그 속에서 유언비어는 자란다. 물질문화는 저만치 앞서가는데 그 속도를 따라 잡지 못 하는 우리의 사회문화적 환경이 생성하는 사회병리현상이다.

▲사회-문화적 지체 현상은 일종의 질병이다. ‘코로나19’란 감염병보다 그 본질이 더 심각하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나 제도적으로는 선진국의 문턱에 이르렀다.
하지만 외연적인 성장을 뒷받침하고 채우는 내용의 혁신은 지지부진해서 현저한 사회 괴리 현상을 보인다. 부끄럽지만 이게 우리의 실상이다.
쉽게 말해 우리나라의 하드웨어는 그럴듯해졌지만 운영체제는 빈곤하다. 앞만 보고 달려온 압축성장으로 나라 경제를 세계의 10위권에 진입시키고 정치적 자유민주주의 체제도 쟁취했다. 그러나 그 내면을 들여다 보면 그러한 성취가 무색할 만큼 부조리가 횡행하고 비합리적이며 저급한 문화적인 풍토가  널려있다. 이러한 사회-문화적 지체 현상이 지금 곳곳에서 갈등과 불만, 상실감을 낳고 있다.

▲우리 정치의 난조도 따지고 보면 민주주의 정신과 시민의식의 결여가 낳는 하나의 지체 현상이다.
대통령제와 의회주의, 삼권분립 등 민주제도를 확립했으면서도 그 운영에서는 국민의 눈 높이에 못 미치는 파행을 계속한다.
돌이켜보면 2014년 4월 세월호 사태로 우리는 부조리가 집합한 종합병원 같은 홍역을 치뤘다. 종교와 정계, 행정, 업계 등이 합작한 총체적인 부조리가 수 많은 어린 학생들을 희생시킨  뼈아픈 참사를 불렀다. 온 국민이 통탄했고 함께 오열했다. 이 나라를 완전히 바꿔야 한다는 국민적인 합의로 촛불을 들었다. 그런데 그 합의는 어떻게 됐나?
그리고 다시 2020년 ‘코로나19’.
나라는 다시 침몰하는 세월호처럼 기울어졌는데 절체절명의 승객들을 구해낼 선장도 조타수도 보이질 않는다. 세월호 때도 어떤 종교 교주가 등장하더니 이번에는 또 어떤 교주가 나타났다.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旣視感)…데자뷔다.
과연 이 나라는 어디로 갈 것인가.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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