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m 구름 위 ‘신비의 왕국’ 마침내 완주
4000m 구름 위 ‘신비의 왕국’ 마침내 완주
  • 강민성 기자
  • 승인 2020.02.27 20:3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부. 은둔의 왕국 무스탕을 가다(16)
거대 협곡의 비탈길을 내려오던 도중 만난 한 마을. 주변의 다랑이 밭이 무척 정겨웠다.
거대 협곡의 비탈길을 내려오던 도중 만난 한 마을. 주변의 다랑이 밭이 무척 정겨웠다.

■ 경험해 보지 못 한 고행

이번 무스탕 트레킹을 돌이켜 보니 대부분 나무가 거의 없는 불모의 땅을 걸어온 듯합니다. 

서쪽 능선 일부 지역 말고는 나무를 본 기억이 없습니다. 특히 로 지역은 황갈색 언덕이 끝없이 펼쳐져 마치 티벳 고원과 비슷하다고 말하는데 제게는 이 곳이 더 황량해 보였습니다. 

무스탕은 히말라야에서도 강수량이 가장 적은 곳으로 꼽히고 네팔에서는 더더욱 비가 적게 내리는 지역으로 알려졌답니다.

트레킹을 나섰던 시기가 마침 몬순 기간이었는데 좀솜과 사마르마을을 들렀을 때를 제외하고는 비가 내리는 것을 보지 못 했습니다. 그런데 겨울에는 이 지역에 눈이 자주 내려 어떤 때는 30~40㎝씩 쌓이기도 한답니다.

이런 황무지 같은 땅이지만 여름철 농작물이 자라면 사막 같던 마을이 오아시스처럼 변한답니다. 

오래 전 안나푸르나 트레킹 때 동행했던 현지가이드가 무스탕 출신인데 그는 “봄철 무스탕은 유채꽃이 장관”이라고 알려줬습니다. 그 때 처음 무스탕 이야기를 들었고 언젠가 꼭 가보자고 생각했습니다. 

지금 걷고 있는 이 곳은 그렇게 황량한 지역은 아닙니다. 벌판 너머 협곡을 이루는 산은 풀 한 포기 없는 황갈색 또는 회색 언덕이지만 이 벌판에는 키 작은 나무와 풀들이 자라고 있습니다. 
고개를 들자 멀리 우리 일행이 첫 날 걸었던 지역이 훤히 보입니다. 상당히 가까워 보이지만 사실은 엄청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먼지가 없고 아직 청정 지역이라 그 먼 거리가 가깝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번 무스탕 트레킹의 마지막 코스를 걷던 도중 만난 거대 협곡지대.
이번 무스탕 트레킹의 마지막 코스를 걷던 도중 만난 거대 협곡지대.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걸어가자 현지가이드 중 나이가 어린 리마가 옆으로 다가옵니다.

키는 크지만 아직 앳된 티를 벗지 못 한 리마는 한국말을 곧잘 했습니다. “어디서 한국말을 배웠냐”고 묻자 가이드 일을 하면서 대장 가이드인 비루와 한국 사람들에게 배웠답니다.

나이는 25살, 우리 아들과 같은 나이라 마치 아들과 함께 트레킹을 하는 기분도 들었습니다. 나란히 걸으며 집안 사정과 앞으로 하고 싶은 일 등 별별 이야기를 즐겁게 나눴습니다.

점심을 먹고 한 언덕에 오르자 가이드들이 앞으로 갈 길을 설명하며 “눈 앞에 보이는 산모퉁이를 돌아 내려가면 추상”이라고 알려줍니다. 이미 산모퉁이를 두 번이나 돌았는데 또 다른 산이 떡하니 버티고 있어 한숨이 나옵니다. 

날씨가 끄물거리기 시작하는데 일행은 벌써 저만치 떨어져 있습니다. 리마와 강원도에서 온 김태수 선생이 뒤처진 저를 독려한다고 보조를 맞추느라 애를 쓰고 있습니다. 지금껏 트레킹을 하면서 이렇게 뒤처진 적이 없었는데 이 코스에서는 맥을 못 추고 있습니다.

부지런히 따라가면 일행은 다시 출발해버려 점점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아 김 선생에게 “먼저 가라”고 했지만 그는 “천천히 가면서 산도 보고 좋다”며 굳이 동행하겠답니다. 고마우면서도 동시에 미안했습니다. 사진이라도 찍어주고 싶었지만 지칠 대로 지쳐서 카메라를 들 힘도 없습니다.

한참 동안 걷다 쉬기를 반복하다가 협곡 아래를 내려다보니 장관이 펼쳐집니다. 어디서 힘이 났는지 서둘러 작은 언덕에 올라 카메라를 듭니다.  

셔터 소리 요란하게 사진을 찍고 내려오자 김 선생이 “사진을 찍을 때는 전혀 다른 사람 같다. 힘들다고 한 게 핑계 아니냐”고 농을 건넵니다.

■ 천신만고 끝에 도착

크고 작은 산등성이를 몇 개나 돌았는지…. 넓은 분지 같은 곳이 나오자 리마가 “저 곳부터는 내려가는 길”이라고 합니다. 순간 ‘다 왔구나’ 했는데 진짜 고생은 여기부터 시작됐습니다. 

멀리 앞서 간 일행 모습이 보이는데 내리막길이 얼마나 가파른지 까마득합니다. 거기다 웬 자갈이 그리 많은지 걸핏하면 미끄러져 진땀이 났습니다. 

그런데 게걸음으로 조심조심 내려오다가 제대로 미끄러지면서 넘어져 그만 무릎이 꺾이고 말았습니다. 제가 ‘악’ 소리와 함께 쓰러지자  김 선생과 리마가 깜짝 놀라며 달려옵니다.

보다 못 한 김 선생이 제 카메라 가방을 대신 메고 리마가 뒤를 받쳐주면서 다시 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갈수록 제가 자주 미끄러지고 탈진 초기 증세마저 보이자 리마는 잔뜩 긴장합니다.

여기가 천길 벼랑이라 잘못 미끄러졌다가는 큰일이 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날이 점점 어두워지면서 한기가 몰려오고 물도 다 떨어져 갈증도 심합니다. 거기다 뒤처진 우리를 기다리는지 멀리서 왔다갔다하는 일행도 보여 이리저리 미안할 따름입니다. 

마침내 마지막인 듯한 언덕에 이르니 협곡 아래 석양에 물든 마을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그냥 지나갈 수 없어 염치없이 카메라를 들어 올렸습니다. 곧 쓰러질 듯 걷던 사람이 사진을 찍고 있자 리마가 어이없다는 듯 바라봅니다.

마침내 언덕을 다 내려오자 정희동 대장이 걱정됐던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제 다 왔다”고 했으나 산모퉁이 돌아 마을이 보이는 곳에 이르자 또 급경사입니다. 앞선 정 대장이 큰 돌을 다 치워주면서 가고 있으나 차라리 주저앉아 미끄러지듯 내려가고 싶은 심정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숙소에 도착하니 후배 양성협이 달려와 “고생했다”며 물병을 건넵니다. 물병을 들고 벌컥벌컥 물을 마시니 얼굴에 물방울이 떨어지는데 마치 눈물처럼 느껴집니다. 무스탕을 완주했다는 기쁨보다 어떻게 그 멀고 험한 길을 다 걸어올 수 있었을까 하는 의아심이 들었습니다. 이제 드디어 험난한 코스를 다 마쳤습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일행들이 한 언덕에서 최종 코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일행들이 한 언덕에서 최종 코스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강민성 기자  kangm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