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생프로젝트, 헬스는 기본, 뷰티는 덤
위생프로젝트, 헬스는 기본, 뷰티는 덤
  • 제주일보
  • 승인 2020.02.26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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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영 (서울벤처대학원대학교 KBII 한국뷰티산업연구소 수석연구원)

목욕은 머리를 감고 물로 몸을 씻는 행위와 마음을 다스리는 효과도 있는 생활 행위라 할 수 있다. 탁족, 발물, 물맞이 등의 생활풍습에서도 읽을 수 있듯, 목욕은 물로써 몸의 자연 치유력을 적극적으로 끌어내는 대표적인 자연치료 요법이다.

우리나라에서 목욕이라고 할 만한 비교적 구체적인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삼국시대다. 그 중 신라 시조 박혁거세와 그의 왕비 알영이 목욕을 한 후 몸에서 광채가 났다는 기록에서 신라인이 물을 신성시하며, 목욕을 중요시하고 목욕재계를 계율로 삼았다. 고려도경에는 고려인들이 하루에 서너차례 목욕을 했고 개성의 큰 내에서 남녀가 한데 어울려 목욕을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삼국시대의 목욕이 종교적 의미가 강했다면 고려시대부터는 점차 목욕이 질병치료와 예방의학의 개념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고려와 조선의 상류층 여성들은 특별히 미용목욕을 즐겼는데 주로 식물의 잎이나 줄기 등을 증탕하여 목욕물에 섞어 넣는 것으로 주로 난초 물을 이용한 난탕이 은은한 향이 있어 인기가 있었다.

위생이란 인간의 삶을 저해하거나 혹은 해를 끼치는 요소들을 제거하여 쾌적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게끔한다는 의미를 지닌다. 인간의 건강에 유익하도록 그 조건을 갖추거나 대책을 세우는 일을 뜻하기도 한다. 문화적인 차이나 종교, 성별등에 따라 기본적으로 위생적이라는 삶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람의 건강을 관리하고 질병의 확산을 막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라 할 수 있다.

위생의 발전은 공간, 특히 도시환경의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도시 곳곳에 물을 공급하는 계획은 보이지 않는 수도망을 통해 도시 전체가 연결되는 새로운 도시의 이미지를 낳았으며, 공중 목욕탕의 확대를 통해 보다 폭넓은 계층에 깨끗함과 더러움, 즉 청결과 목욕을 알리는데 기여하였다고 볼 수 있다.

고대 그리스나 로마시대, 그 이전의 문명시대에도 나름 위생관념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우리가 일반 상식수준으로 알고 있는 개념이 정착되기 시작한 것은 끔찍한 전염병과 수많은 전쟁을 겪으면서 알게된 160여년전이다.

14세기 중반전까지도 나름 위생적인 삶을 누리던 시대였으나 페스트와 매독이 확산되고 열악한 위생시대인 근세초반에는 목욕을 아예하지 않던 시대였다. 일반적으로 암흑기라 불리던 중세초에는 목욕문화를 즐기는 것이 부의 상징이며 미덕이었다.이는 중세 후반으로 접어들면서 카톨릭의 영향으로 과거의 유물들을 부정하는 풍조가 확산되고 중세초까지 유지되 오던 목욕문화가 사라지면서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모공이 쉽게 열려 역병이 침투한다고 생각했다. 당시 유럽의 인구의 3분의 일을 빼앗아 간 페스트가 번질때도 몸을 씻지 않고 의복만 갈아 입었다.물로 씻는 것은 손을 살짝 씻는데 그쳤으며 린넨으로 짠 옷이 땀을 흡수한다고 여겨 린넨 옷을 입고 땀을 흘린 후 옷이 땀에 젖으면 다른 옷으로 갈아 있으면 몸이 깨끗해졌다고 믿었다.

루이 14세가 평생 동안 거의 목욕을 하지 않았다거나, 파리에서는 18세기까지만 해도 아침마다 창문을 열고 길에다 오물을 버리는 일이 일반적이었다거나, 더러운 냄새를 감추기 위한 목적에서 향수 사용이 발달되었다거나 하는 등의 이야기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실들이다.

귀족과 부르주아 계층에 의해 주도된 청결 개념의 변화는 18세기 이후 위생에 대한 관심이 증대되면서 일반 서민층에까지 확대됐다. 오물이 가득한 서민들의 공간이 지닌 위험이 특히 강조되고 도시환경과 병원 등을 재정비하는 노력이 이루어졌으며 위생에 관한 상세한 계몽과 교육이 이루어졌다.

중세 이전까지 물은 청결보다는 쾌락과 더 깊이 연관되어 있었다. 16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흔히 볼 수 있었던 목욕탕은 일탈과 유희, 매춘과 폭력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장소였다. 페스트가 크게 유행하면서부터 목욕탕은 페스트를 퍼뜨리는 온상으로 지적되어 자취를 감추게되고 몸에는 수많은 모공과 구멍들이 나 있어 외부 요인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으며, 오염된 물은 몸에 스며들어 신체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물이 다시 중요하게 등장하는 것은 페스트의 위협이 기세를 잃은 18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이다. 물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상존하는 가운데 다시금 물의 영향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시도가 이루어지기 시작해, 심신을 이완시키는 더운물 목욕과 신체를 수축시키는 냉욕의 효과가 구분되어 이용됐다.

귀족층을 중심으로 하는 더운물 목욕은 세련되고 섬세한 감각과 관능, 여유와 사치를 의미한 반면, 새로이 부상하는 부르주아들은 반대로 활력을 가져다주고 신체를 단련시키는 냉욕을 선호했다.

위생의 개념이 적극적으로 전파된 것은 크림전쟁이었다. 영국군에 종군한 플로렌스 나이팅게일이 도입한 위생지침이 민간에 알려지면서 시작되었다. 알려진 사실대로 실제로 전쟁에서 전사한 군인들의 수보다 가벼운 부상을 치유하지 못하거나 병상에서 전염병으로 죽은 군인들의 수가 4배나 많았던 것을 나이팅게일이 위생지침들을 지켜내어 부상자들의 병원내 사망률을 40%에서 2%로 감소시키는 큰 공을 세웠다.

위생프로젝트, 위생은 건강을 지키고 질병을 예방하는 행위로서 정당화된다. 따라서 위생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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