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적 불법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
위헌적 불법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2.20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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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방울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연구원·논설위원

우리 법은 헌법을 정점으로 피라미드 구조를 이루고 있다. 

헌법은 최상위법으로서 국가의 기본 조직과 국민의 기본권을 규정하고 있다. 그 정신과 취지에 따라 나머지 법률과 시행령, 시행규칙들이 제정된 것이다. 

따라서 하위법령들이 헌법에 위배될 때에는 위헌법률심판에 따라 효력을 잃게 된다. 그리고 상위법과 하위법이 서로 충돌할 경우 우리 법은 상위법을 우선적으로 적용하게 돼 있다. 철저하게 하위법은 상위법에 구속되게 돼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법농단 사건 1심 재판부는 “위헌적 불법행위로 징계 등을 할 수는 있을지언정 죄를 물을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최상위법인 헌법을 어긴 불법행위가 있었는데도 그 하위법인 형법으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것인데,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우리 헌법은 제103조에서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재판은 그 어떤 외부의 개입이나 간섭 없이 법관의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사건의 경우 독립적으로 이뤄져야 할 재판 과정에 외부 개입이 있었다. 부장판사가 다른 판사가 진행하고 있는 재판 과정에 개입했다는 것이다. 이는 명백히 위 헌법 제103조를 위반한 행위다. 이번 1심 재판부도 “부장판사의 재판 관여행위가 법관의 독립을 침해하거나 침해할 위험이 있는 위헌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이러한 위헌적 행위를 처벌하기 위해서는 죄형법정주의에 따라 형법에 그 근거 규정이 있어야 한다. 그 조항으로 제시된 것이 바로 형법 제123조 ‘공무원의 직권남용죄’에 대한 규정이다. 

그 조항은 다음과 같다.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한 때에는 5년 이하의 징역, 10년 이하의 자격정지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직권남용의 범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다. 

기존의 대법원 판례는 “공무원에게 우선 주어진 권한이 있어야 하고, 그 권한을 넘어서 타인에게 의무 없는 일을 시키는 등 권리행사를 방해할 때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는 것이다. 직권남용의 범위를 아주 좁게 해석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사법농단 사건의 경우 부장판사에게는 재판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이 아예 없기 때문에 이 재판 개입행위의 직권남용 여부를 판단할 수 없고 따라서 이 행위는 형법 상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판사가 아예 권한 밖의 행위를 마음대로 해도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말인가? 

판사의 재판 개입행위가 직권남용에 해당되느냐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직권남용죄의 구성요건을 탄력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우선 직권이란 “공무원이 그 지위나 자격으로 할 수 있는 일 또는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를 말한다. 이 경우 판사의 권한이란 무엇인가. 헌법과 법률을 준수하며 양심에 따라 독립적으로 재판할 수 있는 권한일 것이다. 

판사는 외부 간섭 없이 자기 재판을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고 자기 재판의 독립성을 위해서는 다른 판사의 재판에 개입해서도 안 된다. 

남용이란 “그러한 권한을 본래의 목적이나 범위에서 벗어나 함부로 행사하는 것”을 말한다. 판사의 권한은 독립적으로 재판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타인의 재판에 개입해서도 안 된다. 이것은 헌법에 규정된 판사의 권한이자 임무이다. 

이러한 권한을 넘어선 행위는 당연히 판사의 직권남용이다. 형법 조항은 최상위법인 헌법의 정신과 취지를 살려서 해석돼야 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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