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기생충
인간과 기생충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2.19 1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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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 전 서울신문 편집부국장·논설위원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당분간 화제를 계속 만들어 나갈 전망이다. 개봉관이 계속 늘어나고 신드롬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봉준호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한 말 중에 인상 깊었던 것은 두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오스카 측에서 허락한다면 이 트로피를 텍사스 전기톱으로 5개로 잘라서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며 영화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에 빗대 기쁜 심경을 전했다.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사건’은 1974년 토브 후퍼 감독의 시리즈 첫 번째 작품을 시작으로 40년 가까이 이어지고 있는 유명 스릴러 영화 시리즈다. 

또 하나는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고 했다. 영화의 흐름을 보면 부자와 가난한 사람의 설정은 개인적이면서도 사회적 시각에서 접근했다. 이를 바탕으로 감독이 창의성을 녹여냈다고 할 수 있다.

어쨌거나 봉준호 감독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하며 ‘기생충’이란 단어를 세계적인 인기어로 만들어냈다. 사실 기생충이라고 할 때는 공생을 의미한다. 1897년 독일의 학자 안톤 드베리는 두 생물이 밀접한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고 했다. 기생 생활은 한 쪽이 일방적인 이득을 취하고 있는 경우이기도 하고 둘 다 공멸할 수도 있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은 공멸의 예시를 준 셈이다. 반지하에 사는 가난한 집 그리고 부잣집 둘 다 파멸한다는 내용을 그렸다. 이 대목에서 기생충에 대해 얘기를 해보자. 기생충이라고 하면 징그럽고 더러운 것으로 생각한다. 여러 기생충들이 인간의 몸에서 영양분을 빼앗고 소화불량이나 각종 염증을 유발한다. 세상은 기생충으로 가득 차 있다.

현재 장내기생충에 감염된 인구는 약 10억명 이상으로 학자들은 추산하고 있다. 그러면서 학자들은 기생충의 정의에 대해 두 가지 방향으로 말을 한다. 기생충 학자의 입장에서는 “한 생물이 다른 생물과 관계를 맺은 과정에서 한 쪽이 다른 한 쪽에게 해를 입히거나 상대방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관계”로 본다.

반면 생태학자는 “숙주의 생식력을 저하시키거나 사망을 초래하는 관계”라고 말한다. 기생축학에서 에너지의 교환을 주로 본다면 생태학에서는 번식에 미치는 영향을 본다.

그렇다면 기생충은 도대체 어디서 왔을까? 아마도 자유 생활을 하는 생물체 중 일부가 우리 몸에 들어왔을 것이다. 그들이 우리 몸에 일부러 들어왔을 수도 있고 우리가 음식을 먹는 과정에서 우연히 들어온 것일 수도 있다.

그들 중 일부는 자유 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회의를 느꼈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헤매는 것도 힘들고 자신을 노리는 다른 생물체로부터 도망 다니는 것도 이제 지겨웠다. 그런데 사람의 몸속은 어둡고 침침하긴 하지만 최소한 굶어 죽을 염려는 없다.

하지만 모든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기 마련으로 사람 몸에 살기로 한순간부터 그 생물체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한다. 위에서 열거한 어려움 이외에 기생충이 넘어야 할 가장 큰 난관은 숙주의 면역과 싸우는 것이었다.

사람으로 봐서 기생충은 이물질이므로 우리 몸의 면역계는 어떻게 하든지 그것과 싸워 그들을 쫓아내야 한다. 항체를 보내서 공격하고 면역세포가 직접 가서 타격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기생충은 박테리아나 바이러스와는 달랐다. 크기도 엄청나게 큰 데다 빠르기까지 하니 기껏해야 세포인 면역세포로서는 상대하기가 어려웠다.

기생충으로 사는 건 사실 힘든 일이다. 사람 몸에 사는 회충을 예로 들어보자. 깜깜한 데다 끈적끈적한 점막으로 덮인 사람의 창자는 심지어 회충에게도 그리 좋은 환경은 아니다.

게다가 기생을 하는지라 음식을 골라 먹을 수가 없다. 숙주가 술을 마신다면 회충도 같이 취해야 하고 숙주가 단식원에 들어가면 같이 쫄쫄 굶어야 한다.

기생충은 반려견이나 마찬가지이다. 하여 서로 같이 지내야 한다. 다만 음식을 잘 선택해서 건강하게 면역력을 키우며 살 수밖에 없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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