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선피화(僞善被禍), 오소감심(吾所甘心)
위선피화(僞善被禍), 오소감심(吾所甘心)
  • 제주일보
  • 승인 2020.02.1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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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수필가

몇 해 전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의 청령포를 찾았다. 나룻배를 타고 섬 아닌 섬으로 건너갔다. 삼면이 물이요 한 면은 험준한 산으로 둘러싸인 적막한 곳이었다.

권력은 무서운 것이다. 당시 세조는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조카 단종을 노산군으로 강등하고 유배를 보낸다. 노산대에 올라 시국을 걱정하며 시름에 잠기었을 단종, 한양과 아내에 대한 그리움이 망향탑이 되었다. 그의 한탄소리를 보고 들은 소나무는 늙은 관음송이 돼 허리가 굽었다. 14571024일 단종에게 사약이 내려지고 시신은 강물에 버려졌다. ‘누구든지 시신을 수습하는 자는 삼족(三族)을 멸한다는 어명이 내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영월 호장이었던 엄흥도는 버려진 단종의 시신을 거둬 지게에 지고 암장을 한다. 그가 그때 한 말이 위선피화(僞善被禍), 오소감심(吾所甘心)’이다. ‘선한 일을 하다가 화를 당하더라도 내가 달게 받겠노라라는 뜻이다. 서슬 퍼런 조정의 칼날을 두려워하지 않고 목숨을 잃을 각오로 사람의 도리를 다한 엄흥도의 충절에 고개가 숙여졌다.

부당한 일을 봐도 눈치만 보다 헛소리만 하는 사람도 있고, 미움을 받을지언정 할 말은 하는 사람이 있다. 우한 폐렴을 처음 알렸던 중국의 제갈량 의사 리원량. 중국의 공안당국은 입을 막으려 했지만, 온 세상에 코로나19의 정체가 드러났다.

세상을 떠난 리원량이 남긴 메시지가 큰 울림을 준다.

나는 본디 평범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입니다. 어느날 하느님이 나에게 그의 뜻을 백성에게 전하라 하였습니다.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러자 누군가 나에게 태평한 세상에 소란피우지 말라고 했습니다. 전 세계가 지금의 안녕을 계속 믿게 하기 위해 나는 마개 닫힌 병처럼 입을 다물었습니다. 선홍색 인장으로 내 말이 모두 동화 속 꿈이었다고 인정했습니다.’

가슴을 울리고 눈가를 적시는 구절이다. 정권에 의해 언론이 차단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평범한 국민으로서 도리를 다하고자 하는 한 개인의 참 뜻이 권력에 의해 꺾이게 되는 안타까운 사회를 본다. 그는 묘비명에 그는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하여 말을 했습니다라고 새기고 싶어 했다. 그렇게 새겨져서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겨지길 바란다.

요즘 선거에 대한 말들이 많다. 누구를 지지할지 고민된다. 제주도는 좁아 한 다리 건너면 이래저래 얽히고설켜 있다. 왕권의 탄압에 굴하지 않았던 엄흥도처럼 용기 있는 사람, 세상의 모든 이를 위해 할 말을 하는 리원량 같은 사람을 지지하기로 했다.

560여 년 전 엄흥도가 살아 있다면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헤아리고 자기 당보다 국가를 위해 일하고 있을 것이다. 리원량이 살아 돌아온다면 비록 정권에 의해 입막음을 당할지라도 굴하지 않고 할 말은 할 것이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아닌 것은 아니오라고 분명히 말할 것이다. 불의라고 생각해서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다 입을 다물었던 순간이 부끄러워진다. 아직도 정의보다 정에 약한 저에게 정의를 실천할 수 있는 용기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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