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맞닿은 고원에 펄쳐진 히말라야 파노라마
하늘 맞닿은 고원에 펄쳐진 히말라야 파노라마
  • 제주일보
  • 승인 2020.02.13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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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은둔의 왕국 무스탕을 가다(14)
무스탕 트레킹 도중 땅게마을 앞 가파른 능선을 따라 올라서자 히말라야 산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감탄을 자아낸다. 능선 뒤로 보이는 산은 세계에서 7번째로 높은 고봉, 다울라기리(8167m)다.
무스탕 트레킹 도중 땅게마을 앞 가파른 능선을 따라 올라서자 히말라야 산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감탄을 자아낸다. 능선 뒤로 보이는 산은 세계에서 7번째로 높은 고봉, 다울라기리(8167m)다.

■ 무스탕을 다녀간 일본 승려
무스탕 사람들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과 신비스러운 자연은 트레킹으로 지친 나그네의 몸을 달래줍니다. 

어두컴컴한 롯지(Lodge, 숙박시설) 한가운데 있는 큰 공간은 이 곳에 머무는 사람들의 만남의 장소가 됐습니다. 국적은 서로 다르지만 같은 길을 걸어와서인지 금방 친해져서 시끌벅적합니다. 서로 맥주잔을 부딪치며 “무스탕의 자연과 사람들의 모습은 그 어느 곳에서도 느껴 볼 수 없는 이 지구 상에 몇 안 되는 오지”라고 입을 모아 말합니다. 

그동안 트레킹하면서 지나 온 길을 돌이켜보니 해발 4000m가 넘는 산 능선으로 다녔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산길은 차가 다닐 수 없는 곳인데 어떤 마을에는 차들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 차들은 어느 길로 다녔을까 궁금해 현지 가이드한테 물었더니 “우리는 트레킹을 하고 있어 옛날 사람들이 걸어 다녔던 길을 따라 온 것이고 차들은 협곡 바닥에 새로 만든 길로 다닌다”고 합니다. 

우리가 걷고 있는 트레킹 코스는 옛날 좀솜과 로만탕을 오가던 길이랍니다. 물론 지금도 사람들이 다니고 있지만, 차량은 새로 만든 길로 다닌다는 것입니다. 궁금했던 것이 풀렸습니다. 
한 기록에 따르면 티벳 라싸를 가기 위해서 무스탕의 여러 마을을 거쳐 갔다고 합니다. 한 일본인 승려는 티벳으로 향하는 과정에서 만난 무스탕의 여러 마을을 자세하게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습니다.

일본인 승려 가와구치 에카이(河口慧海·1866~1945)는 일본의 승려 사회에 염증을 느껴 티벳에서 참된 불법을 구해오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는 1897년 6월 하순 일본 고배항을 떠나 싱가포르를 거쳐 인도 콜카타에 도착합니다. 그는 이후 다르질링에서 인도의 학자 사라트 찬드라 다스와 티벳 사람에게 1년 5개월간 티벳어를 배운 뒤 1899년 1월 중국인 승려로 가장해 네팔에 잠입합니다. 카트만두에서 무스탕을 거쳐 티벳에 들어가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티벳과 중국은 외국인의 라싸 여행을 금지했기 때문에 그가 무스탕을 통해 티벳으로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서북쪽의 오지를 통해 카일라스 쪽으로 들어가겠다고 결심한 그는 그 해 3월 초순 카트만두를 떠나 포카라를 거쳐 툭체에서 한동안 머무르며 잠입 경로를 모색합니다.

툭체에서 짜랑의 한 승려와 교분을 맺은 그는 묵티나트를 거쳐 무스탕 계곡을 따라 올라가 짜랑의 곰빠에서 거의 1년 가까이 머무르며 때를 기다리다가 마침내 서북쪽의 오지 돌포로 우회해 티벳으로 들어가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카일라스를 순례하고 라싸까지 여행하는 데 성공했다고 합니다. 

히말라야 산맥의 거센 바람을 막기 위해 땅게마을의 집마다 돌담이 둘러져 있다.
히말라야 산맥의 거센 바람을 막기 위해 땅게마을의 집마다 돌담이 둘러져 있다.

오늘 우리 일행이 지나는 코스가 당시 가와구치 에카이가 짜랑으로 갔던 그 길이랍니다. 이 코스는 이번 트레킹 코스 중 가장 험준하고 힘든 길입니다. 한 여행자는 “너무 힘든 길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말을 타고 가는 게 좋다”고 기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힘든 코스라 말을 타볼까 고민했지만, 땅게마을에는 탈만 한 말이 한 마리밖에 없었고 일행 중 한 분이 걷기가 너무 힘들다고 호소해 양보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번 코스의 위성사진을 보니 초반만 고생하면 그렇게 어렵지는 않을 듯 보였습니다. 거기다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여기까지 왔으니 끝까지 걸어보자고 다짐했습니다. 이렇게 힘든 오지 트레킹을 다시 할 수 있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아 죽을 힘을 다해 걸어보자고 결심하고 길을 나섰습니다. 

■ ‘죽음의 언덕’ 실감
새벽같이 출발해 언덕을 돌아서니 큰 강이 나옵니다. 강 전체에 물이 흐르는 것은 아니지만 군데군데 물이 흘러 건너기가 무척 힘이 듭니다. 현지 가이드들이 돌다리를 만드느라 애쓰는 게 미안해서 신발을 신은 채 강물을 건넜더니 놀라는 눈칩니다. 만년설이 녹은 물이라 무척 차가웠기 때문입니다. 

강을 건너자 또 언덕입니다. “저 언덕만 넘으면 되느냐”고 묻자 현지 가이드는 고개를 끄덕이기는 하는데 영 시원치는 않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오르고 또 올라 가파른 언덕의 정상에 다다르니 앞에 또 하나의 언덕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습니다. 

뒤따라오던 후배 양성협이 저를 보더니 “형님, 이제야 언덕 하나 오른 겁니다. 앞으로 몇 개가 더 있습니다”라고 합니다. 올라온 길을 되돌아 보니 꽤 온 것 같은데 아직 멀었답니다. 그야말로 ‘죽음의 언덕’이란 말이 비로소 실감이 납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大기자>

트레킹 도중 큰 강이 나오자 트레커들이 서로 도우며 강을 건너고 있다.
트레킹 도중 큰 강이 나오자 트레커들이 서로 도우며 강을 건너고 있다.

 

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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