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맞이
봄맞이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2.11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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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수 시인·문학박사

‘봄-여름-가을-겨울’. 

우리의 삶은 자연의 순환 주기와 닮았다. 자연의 일부로서 생존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자연의 흐름에 순응해야 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우리의 신체 리듬도 자연스럽게 자연의 리듬과 궤를 같이하게 됐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자연을 인간의 대척점에 세우고 정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겨 왔고 그 과정에서 승리의 찬가를 부르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자연의 시간은 순환적이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무한 반복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태어나고(봄), 성장하며(여름), 성숙해지고(가을), 쇠퇴하게 된다(겨울). 
그런데 이것은 눈에 보이는 것, 즉 육체의 시간이고 육체가 스러진 다음에는 영혼의 시간으로 이어져서 ‘봄-여름-가을-겨울’의 시간을 누리게 된다. 종교에서 말하는 윤회의 시간관이 그런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것은 모두 자연의 시간을 우리의 삶 속으로 끌어들이고 융합시켜서 자연과 하나가 돼 순응해 나가려는 의식이 투사된 것이다. 굳이 따진다면 이러한 시간은 ‘감정’ 혹은 ‘감성’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느끼고 수용하고 자신의 삶을 투사하기 위한 시간이기 때문이고 모두가 공감하고 서로를 수용하려는 융합적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연과 대척점에 있는 문명의 시간은 직선적이고 개별적이다. 그 것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시간의 발명’이다. ‘시계’는 그러한 인식의 상징적 상관물이다. 이것은 과학의 시간이고 이성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시간관에서는 어떤 사건이 몇 년 몇 월 며칠 몇 시에 일어났는지를 따지게 된다. 달력이 만들어지고 날짜를 기억하게 되며 사람들을 시간의 순서대로 서열화시킨다. 때로 직선적인 시간이 폭력적이고 잔인하다고 여겨지는 것은 이러한 때문이다. 

직선적 시간을 숭상하는 사람들에게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자연의 일부분으로 순응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순진하거나 야만적인 존재로 간주돼 착취의 대상으로 전락시키고 가축이나 동물들처럼 대하는 것이 당연시 여겨졌다.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로 삼거나 서구 제국주의적 관점에서 동양인들을 비하하거나 하는 것은 그러한 습관의 무의식적 발현이다. 심지어 한 나라 사람 중에서도 빈부 격차를 따지고 지역을 나눠서 서로를 적대적으로 보는 경우도 있는데 이 것 역시 직선적 시간관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어떤 시간을 살아야 할까. 직선적인 시간을 살아야 할까, 아니면 순환적인 시간을 살아야 할까.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늙거나 어리거나 여자이거나 남자이거나 할 것 없이 봄을 맞이하는 순환의 시간을 살고 있다. ‘봄’ 앞에서 우리는 까닭 없이 겸손해지고 온순해지며 하나로 어우러지는 ‘봄의 시간’을 누리게 된다. ‘봄’ 앞에서는 이 세상 모든 존재가 똑같은 출발선에 서 있게 되며 똑같이 소중한 꿈과 희망을 노래하게 된다. 

그 계절 앞에서 우리의 시간은 모든 이에게 공평해지며 소중하고 아름다운 보석이 된다.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에서 보면 시간은 분명히 ‘과거-현재-미래’의 순서로 직선적으로 흘러가는 것이다. 하지만 감정적 혹은 감성적이고 주관적인 관점에서 보면 시간은 오히려 멈춰 있기도 하고 둥근 원처럼 휘어져서 제자리에서 순환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어느 것이 더 좋다고 우열을 논할 수는 없으리라. 역사는 순환하면서 전진하는 것이라는 명언도 있지 않은가. 

우리가 가진 지혜가 이 두 개의 시간을 잘 버무리고 융합시켜 우리 모두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존재가 돼서,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는 지금, ‘입춘대길’이라는 봄맞이 부적을 붙이면서, ‘내가 몇 살까지 살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이 아니라, ‘앞으로 몇 번의 봄을 맞이할 수 있을까, 나에게 남아 있는 봄이 몇 번이나 될까’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나에게 남아 있는 봄을 서로 나누고 아끼며 소중하게 다뤄야겠다. 새해에는 모든 분이 소원성취하시길 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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