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의 정치화’ 시대
‘교실의 정치화’ 시대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2.10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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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선거연령이 ‘만 18세’로 낮아졌다. ‘새내기 유권자’를 겨냥한 각 정당의 전략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만 18세 선거권은 한국 민주주의를 한 단계 더 성숙시키는 획기적인 전기가 될 것이라는 평가도 있다. 한국에서도 ‘교실의 정치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교실의 정치화는 우려할 일이 아니라 환영할 일이다. 교실에서 민주주의를 가르쳐야 성숙한 민주 사회가 가능하다. 독일 사회가 세계에서 가장 수준 높은 정치의식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초등학교에서부터 정치 교육, 즉 민주시민 교육을 체계적으로 시행했기 때문이다.

선거권과 정당에 가입할 권리를 갖게 된 만 18세 청소년들이 맨 처음 정의당의 정식 당원이 됐다는 소식도 있다. 그간 만 18세 이하 청소년들은 선거에 참여할 수 없었고 정당 가입과 선거운동도 제한되는 등 정치적 금치산자 취급을 받아왔다. 

18세 선거권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고 더 폭넓은 청소년 참정권을 쟁취하기 위한 시발점이다.

한국 정치가 매우 낡았기 때문에 만 18세 선거권 부여는 최소한의 조처다. 여기서 더 나아가 ‘만 16세’까지 선거권을 부여하고 피선거권도 20세 이하로 낮추는 노력을 21대 국회에서 기울여야 할 것이 아닌가? 이것은 너무 급진적인 생각인가? 

어른들은 청소년을 미래라 부르지만 청소년은 현재이기도 하다. 

아동·청소년은 ‘보호와 배려의 대상’이지만 동시에 천부 인권의 주체로서 ‘현재의 시민’(Being Citizen)이다. ‘성장하는 시민’(Becoming Citizen)일 뿐만 아니라 ‘현재의 시민’이기도 하다.

현존하는 시민이므로 당연히 시민으로 대우해야 한다. 아동·청소년 스스로 그들의 권리와 책임을 능동적·적극적으로 주장하고 실행하는 과정을 통해 이들이 공동체의 실질적 시민으로 성장하고 발달할 수 있는 인권 주체라는 인식도 보편화해야 한다. 

‘정치적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은 ‘적극적 시민’이다. 이상적인 시민이 되려면 투표에 적극 참여해야 하는 것이다. 국민이 지도자를 뽑는 것은 섬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자유를 보장받기 위해서다. 정치인을 길들이는 것은 국민의 몫이다.

민주 시민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투표는 민주 사회의 주인이 되는 교육과 훈련이다. 

우리나라에서 18세가 되면 주민등록증이 나온다. 운전면허증도 시험을 보면 발급받을 수 있다. 취직도 할 수 있다. 취직하면 세금도 내야하고 또 18살부터 군대도 갈 수 있다. 병역의 의무, 납세의 의무, 노동의 의무, 이런 것들은 다 주면서 대표자를 뽑을 수 있는 권리인 투표권을 주지 않았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았다.

과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나라 중에서 18세에 선거권이 없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했다. OECD 34개 회원국은 오스트리아(16세)를 포함해 모두 18세 아동·청소년에게 선거권을 부여하고 있다. 2016년까지 일본이 우리와 함께 19세 기준을 고집했으나 2016년 6월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18세로 낮췄다. 영국 노동당은 15세 이상이면 당원 자격을 부여한다. 정당 정치가 발달한 선진국의 예에 비춰 19세 미만의 국민을 일일이 통제하려는 ‘유모 국가’(Nanny State)의 관점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청소년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다. 청소년 행복지수는 언제나 OECD 최하위를 다투고 있다. 단 한 번도 존엄한 인간으로 대우받은 적이 없다. 매년 5만~8만명의 아이들이 학교를 떠나는 나라다. 대한민국 100년의 과거를 돌아봐도 청소년은 행복한 적이 별로 없다.

왜 학교는 바뀌지 않았을까? 

그것은 학생들에게 투표, 그 ‘종이 한 장’이 없어서다. 정치인들은 표를 먹고 산다. 표가 없는 청소년에 대해서는 등한시했다. 

지역의 여러 가지 복지 문제가 있는데 그 중에 노인 문제나 여성 문제, 장애인 문제는 아주 빠르게 좋아지고 있다. 그런데 청소년들이 뭘 요구하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공부나 하지’라고 했었다. 

역사적으로 일제강점기의 광주학생운동은 물론 당시 18세 학생이었던 3·1 운동의 유관순 열사를 생각해 보라.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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