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을 해야 할 때’
‘말을 해야 할 때’
  • 부영주 주필·부사장
  • 승인 2020.02.09 1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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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가어(孔子家語)’에는 이런 일화가 나온다. 공자가 주(周)나라 왕실의 사당인 태묘(太廟)에 갔더니 사당의 계단에 쇠로 만들어진 사람이 서 있는데 입이 세 겹으로 봉해져 있었다. 그 동상의 등에는 이런 말이 적혀 있었다고 한다.

“말을 삼가던 사람이다.” 요즘 어딜가나 입을 마스크로 봉한 사람들뿐이다. 주말(7일)에 오일장시장에 갔는데 그 시끄러움이 어딜 갔는지 조용하다. 영판 다른 세상에 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고 보니 옛말이 틀리지도 않다. 중국 송나라 때 양생(養生)에 관한 백과사전인 ‘태평어람(太平御覽)’은 “질병(疾病)은 입을 통해 들어가고 화근(禍根)은 입을 쫓아 나온다”고 했으니….

말을 함부로 하다가는 제 명대로 살지 못 한다는 뜻이다. 그래선가. 행여 기침소리라도 낼라 모두 입을 꼭꼭 닫아버린 ‘침묵의 도시’가 됐다.

▲평소 ‘말을 삼가는’ 사람들도 4·15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정지지도와 여야 정당의 지지도 여론 추이에는 관심을 보인다. 그러다가 요즘엔 달라졌다. ‘올랐다 내렸다’ 경마장판 같은 여론조사에 모두 피로도가 넘쳐 진절머리를 낸다.

그래서 어떤 이는 선거가 끝나면 여론조사 회사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느니 문을 닫게해야 할 것이라느니 흥분한다. 그러나 여론조사 회사들은 다 준비돼 있다. 선거 후 결과가 맞으면 “그것 봐라 맞지 않으냐”고 큰 소리칠 것이고 안 맞으면 예측 실패의 원인을 입을 봉한 ‘침묵하는 다수’에게 돌리면 그만이니까.

‘침묵하는 다수’는 독재정권 때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표현의 자유가 넘치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가장 흔한 분석은 독일 언론학자 노엘레 노이만이 얘기한 ‘침묵의 나선(Thespiral of Silence)’이론이다.

▲그래서 침묵하는 소위 ‘숨은 표’에 관심이다. 여론조사가 우세하면 숨은 표를 경계하고 불리하면 혹시나 하는 기대심리를 갖는다. 하지만 숨은 표의 존재는 실은 여론조사의 부정확성을 말하는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올해들어 여론조사 회사마다 조사기법을 보완했다지만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응답률이 매우 저조해서 인지 들쭉날쭉이다.

숨은 표는 과거 야당 지지자들이 속내를 드러내길 기피했던 데서 비롯됐다. 그런데 지금 유권자들이 속내를 숨기는 이유는 뭘까. 우리 사회가 극한적으로 양쪽으로 나뉘어 상대를 적(敵)으로 여기는 세상에서 저 나름대로 살기위한 보양(保養)책이다.

여당쪽 사람들은 숨은 표가 자기쪽 지지표라고 한다. 반면 야당에는 숨은 표가 있어도 여당은 없다는 주장도 있다. 여당 지지표는 상수(常數)이지 숨은 표가 아니란 얘기다. 어느 말이 맞을까.

▲입 조심하라는 속담이나 격언은 다양하다. 성경에서는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으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고 했다.

유대인의 탈무드에도 “한 번 낚시줄에 걸렸던 물고기는 다시 낚시줄에 걸리지 않는데 어리석은 인간은 입 때문에 자주 고통을 받는다”며 입 조심을 경고하고 있다.

우리 속담에도 “쌀은 쏟고 주워도 말은 하고 못 줍는다”고 한다. 중국 역사서 전당서(全唐書) ‘설시(舌詩)’ 편에는 이런 시구도 있다.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고 혀는 몸을 베는 칼이다(口是禍之門 舌是斬身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에 사람살기가 더 험악해졌다. 모두가 마스크를 하고 말을 않고 속내를 감추고 있다. 4·15 총선일에는 모두가 마스크를 벗고 투표를 할 수 있을까. 마스크를 쓰건 벗건 표로 ‘말을 해야 할 때’가 오고 있다.
 

부영주 주필·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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