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벼린 사슬
마음이 벼린 사슬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2.02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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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선영 문화기획자·관광학 박사

마음이 벼린 사슬’(The mind-forg’d manacles)은 영국의 시인 겸 화가인 윌리엄 블레이크(William Blake, 1757~1827)경험의 노래’(The songs of Experience)라는 시집에 실린 런던’(London, 1794)이라는 시의 한 구절이다. 시를 통해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독점적 병폐와 산업혁명에서 비롯된 급속한 산업화 과정이 가져온 부정적인 영향에 대한 비판을 멈추지 않았던 그는 인간의 마음이 사슬을 만들어내면서 동시에 그 자신이 만든 족쇄에 묶이는 아이러니와 그것이 주는 파괴적 힘, 마음이 벼린 사슬에 의한 인간성 파괴를 경고했다.

근대를 만들어낸 근본악의 실존에 대한 질문을 멈추지 않았던 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h Arendt, 1906~1975)는 과학 기술, 전체주의에 주목했는데 기술 시대에 내재하는 전체주의적 경향을 언급하면서 근본악이란 이상적인 세계를 만들겠다는 명분으로 모든 것을 자기 통제 아래 두고 오히려 인간을 쓸모없는존재로 전락시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마음이 벼린 사슬에 의한 인간성 파괴, 기술사회의 전체주의적 경향이 인간에게 치명적일 수 있는 () 의도적효과를 이미 산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영화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국내에서는 미안해요, 리키라는 제목으로 개봉된 영화, ‘쏘리 위 미스트 유’(Sorry, we missed you)는 간병 시스템에서 성행하는 영국의 0시간 계약과 운영체재, (App) 혁명이 이뤄낸 또 다른 시장, 긱 이코노미(gig economy) 체재의 대행 시스템이 실질 생활임금보다 낮은 급여로 생활하는 영국 내 500만명 이상의 노동자와 그 가족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여준다.

슬하에 두 자녀를 둔 리키와 애비는 뉴캐슬에 산다. 서로를 생각하는 가족애가 강한 가족이다. 리키는 노동자로 이 직종 저 직종을 전전하고 애비는 노인들을 돌보는 가정방문 간병인으로 그녀의 일을 사랑한다.

장시간, 고된 노동 조건을 마다치 않고 일하지만 그들은 재정적으로 독립하거나 집을 소유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런 리키에게 지금이 아니면 결코 없을 기회가 찾아온다. 그 기회란 택배회사의 비정규 프리랜서 운전자가 되는 것인데 매일 14시간 이상 주 6일 근무하는 장시간의 고된 계약 조건임에도 리키는 애비의 차를 판 돈으로 빛나는 새 밴을 사서 1년 내 집을 사는 데 사활을 건다.

그들이 품었던 희망에도 불구하고 리키의 가정에 위기가 온다. 간병인 일에 필수인 차를 팔아 버스로 일을 다니게 된 애비는 시간을 조각내어 쓰는 처지가 되고 두 아이를 집에 오랜 시간 둬야 하는 상황, 간병인 일에 그전보다 최선을 다할 수 없는 현실에 괴로워한다. 반면 리키를 옥죄는 것은 리키가 서명한 새 직장의 근로 계약이다. 휴가는 고사하고 병가도 없으며 일할 수 없는 상황일 때는 반드시 대체 운전자를 마련해야 하고 그러지 못 할 경우 매일 벌금 100파운드를 회사에 내야 한다. 특히 택배의 전 배송과정을 꿰고 있는 단말기는 운전자가 운전석을 비운 지 2분이 지나면 경고음을 내고 운전자의 모든 동선을 기록한다. 이 기계의 분실·훼손에 대한 책임도 운전자에게 있어 그 구입비는 1000파운드나 된다.

한 손 안에 들어오는 택배용 단말기는 세련되고 똑똑한 기술혁명인 동시에 시간 착취, 노동 착취에 최적인 일말의 자비(慈悲) 없는 기술의 상징이다. 비용 절감과 이익 극대화라는 인간이 만든 자본주의 굴레에서 인간(의 노동)은 착취의 대상이 된다.

이 영화의 감독인 켄 로치(Ken Loch)는 이 영화를 통해 우리가 사는 사회의 이러한 시스템이 과연 지속 가능한지를, 소비자인 우리는 과연 온라인 쇼핑, 당일 혹은 새벽 배송 시스템 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노동자의 가정에 압력을 가하고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을 원하는지를, 그리고 자본주의 논리와 삶의 질이 양립할 수 없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를 묻는다.

2010년대 앱 혁명에 이어 지금은 4차 혁명이라는 용어가 담론을 넘어 기술 개발로 이어지는 현상들을 목격한다. 기술 주도의 사회 변화가 빠른 속도를 내는 오늘날, 오래전 한나 아렌트가 우려했던 기술 시대에 내재한 전체주의적 경향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와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인간답게 살 수 있는지, 이 영화는 우리에게 그 방향성에 대한 성찰과 실천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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