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움을 바라는 2020년
새로움을 바라는 2020년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1.27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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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희 제주대 중어중문학과 교수·논설위원

지난 한 해 사랑하는 이들을 많이도 떠나보냈다. 떠나보낸 것이 아니라 떠나갔다. 2020년이 돼도 떨쳐내지 못 하고 드는 후회는 그들과 함께 지낼 조그만 여유도 내지 못 한 것이다.

그래서 처절하게 아쉽고 후회스럽다. 그들과 커피 한 잔 마실 시간조차도 내지 못 했던 혹은 내지 않았던 나의 속절없는 ‘분주함’이 너무나 처절하게 후회된다. 그러나 나는 참 애석하게도 지금도 나의 분주함으로 여전히 같은 고민과 후회 중이다.

내 나이쯤 되면 알게 된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인생은 일정부분 빚지고 있다고. 힘들어도 조금씩은 앞으로 걸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그것이 내가 살아가야하는 이유라는 것을. 왜냐하면 나는 나의 절망과 슬픔에 버금가는 힘을 가지고 있으니까.

나는 성년이 되면 하늘에서 돈도 떨어지고 생각하면 생각하는 대로, 원하면 원하는 대로 다 이뤄지는 줄만 알았다. 만 20살, ‘당신은 성년이다’라고 국가에서 인정해주는 어느 날 호기롭게 집을 나섰다.

엄마에게도 오늘 밤은 친구들과 술도 한잔하고 귀가가 늦을 수 있다고 큰소리 팍팍 친 그 해 어느 날. 평소 같으면 돈이 아깝다고 안 갈 호프집을 과감하고 멋지게(?) 입장했다. 내 기억엔 그날따라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씩씩하고 늠름한 이들이었다. 수중의 돈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들어갔던 우리 친구들은 아연실색했다.

왜냐하면 성년이 됐다고 하늘에서 돈이 떨어지지도 않았고 로또가 없던 그 당시 기대감 만발했던 복권 한 장도 우리들 중에 단 한 사람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아무리 눈을 씻고 봐도 ‘성년의 날’에 성인이 되는 사람에게 ‘공짜’나 ‘할인’이 되는 음식이 하나도 없는 메뉴판에 좌절했다. 일단 한꺼번에 우르르 나가면 너무 ‘없어 보이므로’ 순차적으로 나가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호프집 아르바이트 남성들은 모두 ‘테너’ 수준에 가까운 목소리로 ‘안녕히 가십시오!’를 고객님 사뿐히 떠나시는 걸음걸음마다 족족히 꾹꾹 지르밟으면서 외쳐댔다. 덕분에 우리는 절대 잊지 못한 ‘성년’으로서의 신고식을 제대로 했다. 성년이 되던 그 해에도 여느 해와 다름없이 우리의 지갑엔 ‘만원’짜리 지폐 한 장도 찾기 어려웠다.

세상 물정 제대로 모른 어릴 적에는 2020년이 딱 되기만 해도 하루아침에 마치 다른 세상이 올 것만 같았다. 1900년대를 살다가 2000년대를 살아가야 하는 만큼이나 크나큰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2020년이 되어 한 달이 다 지나가고 있어도 지난해와 크게 달라지는 것이 별로 없다.

해가 바뀌면 뭔가 크게 달라진 세상이 될 것 같지만 어느 정도 나이만 들어도 경험상 안다. 해가 바뀌어도 하루아침에 달라지는 것은 거의 없다는 것을. 대한민국은 다사다난한 지난 한 해를 보냈다. 연일 심란한 뉴스도 많았지만 미처 보도되지 않은 크고 작은 미담도 입에 오르내렸다.

2020년의 대한민국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달라지지 않더라도 아무리 더디어도 한 걸음씩 힘차게 앞으로 나아갔으면 한다. 2020년 개정된 공직선거법이 선거 가능 연령을 만 18세 이상으로 정함으로써 새 유권자가 53만 명이 된다고 한다. 그 중 고등학생이 14만 명 정도라고 추산하고 있다. 올해 유권자가 되는 청년들에게 바라고 싶다.

선거권은 내가 주권을 행사하는 사회구성원으로서 사회에 주체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을 잊지 말고 정치에 무관심하고 모른다고 해서 어른들만 따라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2020년 이들의 첫 ‘선거권’ 행사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성숙하는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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