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게 사과 받는 법
일본에게 사과 받는 법
  • 뉴제주일보
  • 승인 2015.11.23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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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호 영화감독

최근의 한·일·중 정상회담을 보며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많다. 지리상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이면서 동북아 대표국인 3국(國)이 아시아를 리드하면 유럽과 아메리카가 부럽지 않은데 3국의 정상들이 모이기도 어려웠지만 막상 만났어도 서먹한 광경을 연출할 뿐이었다.

그 기저에 깔린 가장 큰 걸림돌이 역사인식이다. 대표적 사건은 난징 대학살과 위안부 문제다. 진심어린 사과를 원하는 한·중과 달리 일본은 사과할 일 자체가 없다는 태도다. 오히려 아베 정권은 한·중의 거짓말을 증명하겠다는 듯 최근에는 ‘전쟁, 역사인식 검증위원회’를 총리 직속기관으로 설치하겠다고 한다. 패전의 책임을 차세대에 대물림 시키지 않겠다는 아베 총리의 말에 힘이 느껴지는 이유다.

한·중의 입장에선 기가 찰 노릇이나 가끔은 ‘도대체 저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하고 의구심을 갖게도 된다.

지난 9월 일본의 안보법안 폐지를 통과시키는 그날 밤에 필자는 일본에 있었다. 방송은 참의원의 지루한 과정을 밤새 내보냈다. 한국의 보도와는 달리 모두 차분했다. 참의원 의사당 밖 시위대도 조용했고 강력하게 반대할 거라던 야당 총수나 의원들의 발언도 차분했다.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 적당히 반대하고 거국적으로 가볍게 통과시킨 것이다. 아베 총리의 주장이 일부가 아니라 대다수 국민의 뜻이라는 방증이다. 단, 그것을 대놓고 안하고 일본스럽게 할 뿐인 것이다.

필자의 지인 중엔 본의 아니게 일본의 우익 민간인이 많다. 영화업은 대체로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라 처음엔 전혀 못 느꼈다.

심지어 필자가 “일본은 버블경제 전에 전쟁발발국으로서 책임을 느끼고 아시아 피해국에 보상을 했어야 했다. 그 당시 넘치는 현금을 미국과 유럽에 펑펑 쓰고 아시아에 인색했던 게 가장 큰 실수다. 당시 피해를 끼친 국가에 보상을 하고 진심으로 사과를 했다면 지금쯤 일본은 아시아 경제 리더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을 것이다.” 라거나 “일본은 자국민에게 불편을 주고 있다. 과거사 문제를 제대로 청산 안 하니 일본 국민이 아시아에서 사업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등을 함부로 주장해도 묵묵부답 혹은 고개를 간혹 끄덕이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그들과 교류한 지 10여 년. 이제 정말 친해진 건지(?) 내 주장이 틀리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심지어 여러 가지 실증과 사례들을 나열하며 증거를 제시하려 한다. 야스쿠니 신사를 같이 가보자는 제안까지 받은 적 있다. 듣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 이 사람들은 전 세계 유일한 전쟁 피폭국의 국민으로서 피해자이지 가해자라는 생각이 전혀 없구나’ 이다. 오히려 외국인이 이 억울한 진실을 제대로 알기를 원한다. 그것이 자기들만의 진실인 줄은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국민들이다.

어릴 때, 할머니한테 혼난 적이 많다. 필자의 천방지축 행동이 그 원인이라 시작은 다른데 끝은 항상 같아야 했다.

“잘못 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러겠습니다.” 라는 말을 진심어린 행동과 함께 고백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꼭 여기서 사단이 난다. 할머니한테 혼나는 것은 당연하지만 별로 잘못 했다고 생각 안하는데 거짓말을 하려니 영 속이 상한다. 그래서 입을 굳게 다물다 보면 매를 벌게 되거나 징벌시간이 연장되곤 했다. 그러다보면 괜히 반항심만 커지는 경우도 있었다.

국가와 개인은 다르다. 그러나 잘못 했다고 생각지도 않는 국가에게 자꾸 사죄하라 하면 그게 통할 리가 없다. 사실 자꾸 사죄하라는 것도 이웃 간 정이다. 그래야 더 좋은 미래관계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냉정한 국가 간 관계에선 잘못을 깨닫지 못해 더 좋은 미래를 설계 못하는 국가는 내버려 둘 일이다. 엎드려 사정해가면서 사과 받을 일은 더더욱 아니다. 정 사과를 받고 싶다면 필자의 할머니처럼 밥과 회초리를 갖고 있어야 한다. 강한 국가에는 저절로 사과하지만 약한 국가에겐 사과하기 싫으면 전쟁을 통해서라도 지배해 버리는 게 그간 증명된 인류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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