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에 문화와 예술은 공란인가?
제주특별자치도에 문화와 예술은 공란인가?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1.20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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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태 시인·다층 편집주간

김구 선생의 백범일지나의 소원이라는 글이 있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문화는 구성원을 행복하게 하고 서로의 마음을 열어준다. 요즘은 문화라는 말을 아무 데나 갖다 붙여서 조자룡 헌 창 쓰듯이 사용하는데 문화를 만드는 핵심은 예술이다. 이러한 예술의 기반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지역의 문화와 예술을 만드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지방자치제가 활성화돼서 최근에는 그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지만 중앙이라고 일컬어지던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에 비해 아직도 제주지역의 문화적 기반은 너무나 열악한 실정이다. 정보화 시대가 열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는 다양한 문화가 생산·유통되면서 그 양상이 상당히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기만 하다.

지역 문화 예술인들의 역량은 다른 지역에 비해 절대 뒤지지 않는 수준에 있다고들 한다. 이러한 지역의 특성을 고려한다면 이에 걸맞은 정책이 시행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다른 지역에 비해 변별력이 있는 문예 정책이 있었는지는 와 닿는 것이 없었다.

필자는 1999년부터 제주에서 전국적인 문예지의 편집주간을 맡아오고 있다. 그동안 별의별 소리를 들었다. ‘돈이 많고 시간이 많으니 여유 부린다’,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에너지를 낭비한다’, ‘그럴 시간에 네 일이나 제대로 하라등등.

돈이 많고 시간이 남아서 그런 게 아니다. 지역 문학의 발전이라는 지극히 어리석은 목표 하나가 오늘에 이른 이유일 따름이다.

해마다 세밑이면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지난 한 해 동안의 도정을 결산하는 단행본 제주특별자치도를 발간하고 있다. 2019년에 발간된 것이 통권 123호이니, 이 기록들을 모아 정리하면 우리 제주도의 현대사를 온전하게 정리할 수 있을 듯하다.

‘2020 제주특별자치도 예산안 제출에 즈음하여라는 도지사 연설문이 권두언으로 실려 있다. ‘민생경제 살리기, 청정환경 지키기, 농어업 대책, 복지와 안전, 교통과 주거, 문화와 관광, 상생의 공동체를 표방하는 내용이다.

그 중에서 문화와 예술에 관한 부분을 보면 창작 여건 개선 및 예술 공간 확충, 제주의 자원을 활용한 예술문화 콘텐츠 개발로 도민과 관광객이 일상에서 제주를 느낄 수 있도록 문화 예술의 섬으로 조성하겠노라고 밝히고 있다. 문학에 종사하는 필자의 입장에서는 요즘 말로 느낌이 1도 안 오는’, 지극히 장식적이고 상투적인 코멘트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러한 생각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이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그 느낌은 더욱 절실해진다. ‘민선 71주년 특집을 시작으로 일자리, 교통, 환경, 4·3, 탄소 없는 섬, 분야별 주요 정책, 안전, 관광, 농업, 해양수산, 축산, 복지, 환경, 주거, 소상공인, 여성으로 이어지는 360쪽이 넘는 발간물을 일일이 살펴봤다. 하지만 그 어느 곳에도 문화와 예술에 대한 행정 결과를 정리한 것은 찾을 수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거의 해마다 반복된다. 최근 4년 동안의 같은 발간물에서 문화와 예술에 대한 자료는 찾을 수가 없다. 지난 한 해 동안 문화·예술 행정이 빈칸이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물론 다른 발간물을 통해서 문화와 예술에 대한 현상이나 행정 결과를 정리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도정 1년을 결산하는 발간물에 문화와 예술에 관한 내용이 전혀 없다는 자체도 문제지만 이러한 현상은 그만큼 도정이 그 분야를 소홀히 하고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부분이라 생각된다. 실제로 예술계 인사들을 만나 얘기를 하다 보면 여타의 분야에 비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고 있음을 자주 느끼게 된다.

제주특별자치도 일 년을 결산하는 한 권의 책에 문화·예술 분야가 들어가 있다, 아니다도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문화·예술인들의 피부에 와 닿는 문화·예술 정책을 펼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 다시 한 번 백범 선생의 문장을 힘주어 읽어본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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