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상징 팽나무가 사라지고 있다
마을의 상징 팽나무가 사라지고 있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1.19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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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철 자연사랑미술관 관장

큰 나무가 간직해 온 조상의 숨결과 아주 오래 전부터 전해 내려온 우리 고장 설화(說話)는 우리 국민들 마음 속에 담겨있다.

마을 앞 정자나무 밑에서 뛰놀던 추억은 언제나 고향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오랜 세월 모진 풍상을 헤치고 살아남은 늙은 나무들은 마을의 전설과 선조들의 유훈으로 인해 나무 자체가 신성스럽게 여겨지게 됐다.

그 때문인지 우리 제주섬 각 마을도 마을을 상징하는 나무 한두 그루씩을 보호해왔다. 이러한 나무는 마을에 크고 작은 일이 일어났을 때 모임 장소로, 여름철에는 무더위를 식혀주는 정자로 쓰였으며 동네 정보를 주고받은 중요한 장소가 되기도 했다.

인도에는 사람이 죽으면 나무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는 토속전설이 있는데 우리의 큰 나무들도 이러한 전설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우리는 마을의 구심점인 이 큰 나무들과 함께 호흡하며 살아왔다.

찬서리 눈보라 등 모진 고난을 이겨내며 마을을 지켜 온 큰 나무. 우리는 이러한 나무를 신처럼 모셨기에 신목(神木)이라 부르기도 했다. 바로 제주지역 마을 곳곳에 있는 팽나무다.

느릅나무과로 나무의 높이는 20m, 둘레가 1.2m까지 자라는 낙엽교목(落葉喬木)으로 주로 제주도를 중심으로 남부지역에 자란다. 정자목으로 마을마다 심어진 이 나무는 우리에게는 폭낭으로 더 잘 알려졌으며 저지대 숲속에서도 드물게 자란다.

나무의 껍질이 마치 돌처럼 보여 나무인지 돌인지 분간하기 어렵다는 상가리 천년 팽나무를 비롯해 와흘리 본향당 팽나무, 명월리 마을 앞 작은 계곡 언저리에 자라고 있는 팽나무 자생지, 성읍마을의 상징 팽나무들은 제주의 상징적 명목(名木)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제주도 주요 당()을 지키는 신목(神木) 대부분이 팽나무인 것만 봐도 우리 선조들은 이 나무를 아주 신성 시했던 것으로 보인다.

인생은 짧고 나무의 수명은 길다. 옛 어른들의 보호를 받아온 팽나무들은 삶의 터전을 찾아 가솔을 이끌고 마을에 정착할 때 구심점으로 정해 놓고 그 밑에 모여 앞으로 보호와 번영을 빌던 나무이기도 했다.

이런 마을 팽나무들이 언제부터인가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육지부 조경용으로 팔리기 시작하더니 이젠 그 숫자가 급격히 줄어들어 농촌 마을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한다.

마을마다 오래된 팽나무가 없어지더니 최근에는 팽나무 구하기가 힘들었는지 농촌 마을 곳곳에는 팽나무 삽니다라는 팻말까지 붙여져 있는 형편이다.

천년을 넘게 선현들이 믿고 보호하던 나무들이 돈 몇 푼에 또는 도로 확장이라는 핑계로 사라지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마을의 혼()이 사라지고 있다고 한탄한다.

 

나무도 사람처럼 마음이 있소/ 숨 쉬고 뜻도 있고 정도 있지요/ 만지고 쓸어주면 춤을 추지만/ 때리고 꺾으면 눈물 흘리죠/ -중략- 나무는 사람 마음 알아주는데/ 사람은 나무 마음 왜 몰라주오/ 나무와 사람들 서로 도우면 금수강산 좋은 나라 빛날 것이오.”

-노산 이은상 선생 나무의 마음

 

마을의 상징 팽나무. 4·3의 아픈 역사와 지역의 자연사를 가늠해 볼 수 있는 이 나무는 시골 마을의 전통 경관을 이루기도 했는데 이제 그 경관마저 잃어가고 있다.

바람 부는 방향으로 뻗은 가지들. 이런 팽나무를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가장 제주적인 경관을 지닌 나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또 팽나무는 바람에 끊임없이 시달리면서도 결코 생명력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정신으로 상징되며 제주 사람의 생애에 가장 의미 깊은 나무라 할 것이다.

이런 노거수 팽나무가 여러 가지 이유로 급격히 감소되고 있고 그로 인해 농촌의 전통 경관이 크게 변해가는 것을 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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