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커버] 신들이 자리 비우는 사이 벌어지는 '이사 전쟁'
[위클리 커버] 신들이 자리 비우는 사이 벌어지는 '이사 전쟁'
  • 현대성 기자
  • 승인 2020.01.16 18: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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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의 고향’에서 신들이 잠시 자리를 비우는 사이, 제주에서는 이사 전쟁이 일어난다. 이른바 ‘신구간’이다.
 
신구간(新舊間)은 ‘신구세관교승기간’(新舊歲官交承期間)의 줄임말로, 여기서 관(官)은 신을 뜻한다. 문자 그대로를 풀이하면 ‘신관’과 ‘구관’이 업무를 교대하는 시기라는 의미다.

제주 사람들은 24절기의 하나인 대한(大寒) 후 5일에서 입춘(立春) 전 3일 사이를 ‘신들이 한 해 동안의 업무를 보고하고 임무를 교대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 있는 기간’으로 보고, 이 때 평소 금기시됐던 이사나 집수리를 했다. 이것이 ‘신구간’이라는 풍습으로 이어졌다. 올해 신구간은 오는 25일부터 다음 달 1일까지다. 

▲신구간 이사 진풍경 ‘옛말’도 ‘옛말’로
신구간 이사 진풍경이 ‘옛말’이라는 말도 ‘옛말’이 됐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만큼, 제주의 신구간 문화는 많이 희박해졌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신구간이 되면 동네 골목마다 이삿짐들 잔뜩 실은 리어카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차량 보급이 증가한 1980년대에는 트럭이 리어카를 대체했고, 이후에는 사다리차가 그 역할을 대신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도내 웬만한 이사는 모두 신구간에 이뤄졌다. 이 같은 문화 때문에 신구간에 사글세로 입주해 1년 후 재계약을 하거나 신구간에 맞춰 다시 이사하는 구조가 반복돼 ‘신구간 특수’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다.

이사 업체와 부동산 업체는 물론이고, 가전제품·가구회사 등도 신구간만 되면 호황을 누렸다.

최근에는 1인 가구 및 이주민 증가 등으로 신구간에 이사가 몰리지 않는 모양새지만 여전히 다수의 도민이 신구간을 맞아 이사를 가고 있다.  

공인중개업체 관계자들은 “‘신구간 특수’는 사라진 지 오래지만 여전히 신구간이면 이사 관련 문의나 실제 이사를 가는 도민이 많다”라고 입을 모았다.

▲신구간 맞춰 이사 가려면…새 보금자리 점검 필수

이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새 보금자리가 가질 수 있는 문제점을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이다. 특히 모바일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방을 알아볼 경우 허위·미끼 매물에 주의해야 한다. 반드시 계약 전 방을 살펴보고, 주간·야간 시간대 모두 방문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가스레인지 등 주방기구와 보일러 등 난방기구, 욕실의 수압과 배수구 상태를 점검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에 더해 해당 주택의 ‘등기부등본’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등기부등본에는 계약하고자 하는 집의 소유자를 포함해 가처분·압류·가압류·근저당권 설정 등의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전세나 월세로 입주하는 경우 가까운 읍·면·동 주민센터에서 전입신고 후 확정일자를 받아야 전세금과 보증금 등을 법률 분쟁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

하지만 확정일자를 받았다고 해서 집이 경매에 넘어갔을 때 100% 보증금을 다 돌려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말소기준권리인 ‘근저당권’이 잡혀 있다면 보증금 반환이 어렵기 때문에 등기부등본을 확인한 후 이런 주택은 피해야 한다.

▲‘떠난 자리도 아름답게’ 이사 시 주의할 점
신구간 이사에 맞춰 가구와 가전제품을 바꾸는 가정이 많다. 그만큼 폐가구와 폐가전제품 등 대형 폐기물 배출도 증가한다. 대형 폐기물 배출은 시청이나 주민센터를 방문해 수수료를 지불하고 ‘대형폐기물 신고필증’을 받아 배출해야 한다.

대형폐기물 배출신청은 인터넷을 통해서도 가능하며, 제주시는 지난 6일부터 모바일 웹을 통한 대형폐기물 신청 시스템을 서비스하고 있다.

 PC를 통한 대형폐기물 신청은 수수료 결제 시 공인인증서와 카드번호 등을 입력해 번거로운 점이 있었던 반면, 모바일 웹을 통한 시스템은 간편 결제 방식을 도입해 편리함을 더했다.

제주시는 주민 편의를 위해 대형폐기물 신청과 배출일 문자 알림 서비스, 배출일 전 취소 등의 기능도 제공하고 있다.
이사를 갈 때는 반드시 가스판매업소 등에 연락해 전문가로부터 가스배관 막음 조치를 받아야 한다. 적절한 가스 배관 조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가스 누출로 대형사고가 발생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제주특별자치도 소방안전본부는 올해 신구간 ‘이사철 가스 주의보’를 발령하고 도내 LPG 판매시설업체에 화재 예방 협조 서한을 발생하는 등 사고 예방에 나섰다.
 

▲알뜰살뜰 중고물품 나눔장터 ‘풍성’ 

제주시는 오는 31일까지 신구간 이사철에 교체하는 중고 가구 및 가전제품을 집중적으로 기증받고, 다음 달 1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3시까지 제주종합경기장에서 ‘신구간 중고물품 나눔장터’를 개최한다.

제주시가 2005년부터 매년 개최해 온 ‘신구간 중고물품 나눔장터’에서는 재사용이 가능한 폐가구와 폐가전, 의류 등 재사용 가능 물품을 기증받아 수선을 거쳐 일정 금액 기부방식으로 1인 1점에 한해 필요로 하는 시민들에게 제공된다. 현장에서 기부물품을 직접 받고, 다른 물품으로 교환할 수도 있다.

제주시는 사용 가능한 가구류 폐기를 줄이기 위해 2017년 10월부터 폐가구 무상수거 사업을 추진 중이기도 하다.

현대성 기자  cannon@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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