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옥 할머니의 삶
윤영옥 할머니의 삶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1.10 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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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가 두 쪽이 나고 정치인들은 정권에만 눈이 쏠려 있는 지금, “네 삶을 좀 돌아보라는 우리에게 따끔한 회초리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오현고 20회 졸업생 고() 이창준씨의 어머니 윤영옥씨(91)는 지난 8일 이 학교를 찾아 장학금 3억원을 내놓았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먹지도 않고 쓰지도 않아 한 푼 두 푼 모은 돈이다. 이 돈은 윤씨가 20102억원을 이 학교에 기부한 데 이어 10년 만에 내놓는 두 번째 장학금이다.

오현고는 윤 할머니의 1, 2차 기부금 5억원으로 아들 이름을 딴 이창준 장학재단을 설립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다.

윤씨는 아들이 태어나던 이듬해 남편과 사별했다. 눈물이 마를 날 없었던 그 시절, 윤씨는 이를 악물고 가족이라곤 오직 하나뿐인 핏덩이 외아들을 키우면서 살았다. 다행히 아들은 성실하게 자라면서 학교 성적도 우수해 한국외국어대학교에 입학했고 이어 한국은행 본사에 입사했다. 하지만 33살의 젊은 나이에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아 그 해 세상을 등지고 말았다. 홀로 남은 윤씨. 여생을 보내던 윤 할머니는 이제 모든 것을 정리하고 남은 것을 기부하기로 했다.

남을 돕는 선행에 크고 작음이 있으랴. 하지만 불경이나 성경에서는 형편이 어려운 사람이 남을 돕는 베풂을 보다 의미 있는 일로 받아들인다. 불경 현우경(賢愚經)빈자일등(貧者一燈)’, 성경 누가복음의 과부의 헌금이야기가 그렇다. ‘쌀독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도 있지만, 자신의 처지도 외롭고 넉넉지 않으면서 모든 것을 다 내놓는 윤 할머니의 모습은 감동 그 자체다.

윤씨는 남은 재산을 모두 장학금으로 다시 내놓으면서 다른 뜻은 없다. 돈이 없어 공부 못 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뿐이다. 우리 아들의 후배들이 앞으로 더 잘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할머니의 말이 아름답고 향기롭다.

삶이란 무엇인가. 아귀다툼 같은 요즘 세태에서 윤 할머니의 이야기는 삶은 과연 무엇일까하는 교훈을 가르쳐주는 것 같다.

설날이 머지않았다. 소외된 이웃에 대한 온정이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는 계절이다. 베풂은 남을 경유해 나에게 돌아오는 행복이다. 주는 이와 받는 이 모두가 감사와 행복감을 느끼게 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공동체를 따뜻하게 만든다. 더 갈라지고, 부딪히고, 각박해져 가는 우리 사회를 어루만지고 더불어 나아가는 계기를 마련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윤 할머니의 아름다운 삶이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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