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사나이
진짜 사나이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1.07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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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애 제주아동문학협회장·동화 작가

얼마 전 신문에서 봤는데 기억에 남는 인터뷰 기사가 있었다.

어느 산업잠수부가 수중작업을 하다 사고로 한 손을 잃었다. 그는 손이 없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손이 아프고 시린 것을 느끼는 환상통에 시달렸다.

그는 그 통증을 이기고자 전국의 해안을 돌며 쓰레기를 치웠다. 제주도에 와서도 자비로 열 달 가까이 방을 얻어 생활하면서 치운 쓰레기가 5000포대가 넘는다고 했다. 어마어마한 양이다.

그러나 아무리 치워 봐도 표가 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파도는 날마다 엄청난 쓰레기를 몰고 올 것이기에 말이다.

북태평양에는 우리나라 면적의 15배가 넘는 약 155넓이의 거대한 쓰레기 섬이 있다고 한다. 그곳엔 일본과 중국에서 온 쓰레기도 많다는데 조류를 따라 떠다니는 쓰레기가 어딘 들 못 가겠는가.

이거 봐. 나 여기 다 치웠어. 어때? 깨끗하지?

이런 식의 생색내기는 애당초 틀린 일인데 보수도 없이 궂은일을 한 그를 사람들이 고마워했을까?

그런데 어디서든 별로 환영을 못 받았다고 한다. 때로는 왜 미리 통보도 없이 일을 벌이냐는 핀잔까지 들었다고 하니 그저 씁쓸할 뿐이다.

그런데도 그는 왜 이 일을 계속할까?

군에서 배운 기술이 평생 자산이 돼 중산층으로 살게 됐고 자식을 잘 키워 결혼까지 시켰으니 나라의 고마움에 보답할 뿐이란다.

기사를 읽는 동안 진짜 사나이라는 노래가 머릿속에 느닷없이 떠올랐다. 그가 UDT 출신이라고 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나라가 가난했거나 산업화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산업잠수부를 고용하는 직장이나 일자리가 있었겠습니까?”

그의 말이 진실로 나에게 잔잔한 감동을 줬다. 나 역시 너나없이 가난했던 시절에 국가보조금을 받으며 대학에서 배운 것으로 평생을 먹고산 까닭에 그 말의 울림이 길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부끄러웠다는 말이다. 나라고 해서 나라에 대한 고마움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가슴이 느꼈다는 것일 뿐 손과 발에 이르지 못 했다. 그래서 부끄럽다.

봉사는 아름답고 정의로운 말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행동이다. 알맹이 없는 말의 성찬이 넘쳐나는 시대지만 그에게 순수성을 의심할 여지는 없어 보였다. 진짜 애국자요, 진정한 봉사자라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고개를 숙였다. ‘당신이야말로 진짜 사나이입니다라고.

산업화 시절의 그늘만 부각되고 있지만 나라가 가난했다면 오늘날 우리가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었을까?

최빈국의 경험을 했던 우리가 산업화의 양지쪽에서 따사로운 햇볕을 쬐며 살아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동안 너무 그 햇볕의 고마움을 잊고 살았지 싶다. 요즘은 그 의식하지도 못 하던 햇볕이 기울어지지나 않을까 걱정하는 소리도 들린다. 이런 말을 한다고 꼰대 소리를 들을지도 모르지만 요즘 현실이 그렇다는 말이다.

기사를 다 읽고 신문을 접을 즈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 국민을 가진 나라라면 대한민국은 멋진 나라가 아닌가?

나라를 이끌고 발전시키는 것은 소수의 엘리트일지 모르지만 나라를 유지해 나가는 건 이런 민초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수많은 외세의 침략을 당하면서 나라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자발적으로 일어났던 민초들의 저력을 기억해 보면 그렇다.

국회는 밥그릇 싸움에 바쁘고 권력 주변에 숨겨졌던 일들이 들통이 나면서 나라 안이 온통 뒤숭숭하고 시끄럽다.

하지만 아무리 우물물이 더러워졌더라도 그 안에 퐁퐁 솟는 한 줄기 맑은 물이 있다면 그래도 언젠가는 정화되지 않을까?

경자년 올해에는 세상을 맑게 하는 진실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많이 들려오기를 소망해 본다.

뉴제주일보  webmaster@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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