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보수’는 어디에 있는가
‘진짜 보수’는 어디에 있는가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1.06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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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후 작가·칼럼니스트

보수주의자는 진보주의가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반면 진보주의자는 보수주의가 편견과 미신에 의존하고 있으므로 이들이 계몽되기만 하면 언젠가 사라질 것이라고 믿는다. 따라서 보수주의자가 더 관용적이다.”

하버드 대학의 보수주의 정치철학자인 하비 맨스필드(Harvey Mansfield)의 말이다.

우리 주위에는 여러 형태의 보수가 존재한다. 어느 작가의 지적처럼 글 보수, 입 보수, 생활 보수, 교회 보수, 게릴라 보수, 생계형 보수 등 널려있다. 보수언론에 이름을 날리는 글 보수를 볼 때 낯뜨거움을 느끼며, TV에 출연해 보수정당의 편을 드는 입 보수를 볼 때 낯간지러움을 느낀다.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보수 세력은 갈피를 못 잡는다. 보수주의라는 정치 이념에도 큰 상처를 남겼다. 보수는 스스로 무너진 것이다. 무능, 부패, 내분, 지도력 상실 등 모든 패인이 한꺼번에 노출되면서 자멸한 보수의 민낯은 처량하기만 하다.

지금까지 지속돼 온 노력에도 불구하고 거듭된 보수의 오판과 실수는 사람들의 마음에 정치 혐오를 불러일으켰고 정권을 되찾고자 하는 그들의 염원도 끝내 실패를 거듭하고 말았다. 우리는 보수정치의 미숙한 실체를 발견하고는 분노를 넘어 참담함을 느껴야 했다.

진짜 보수는 보이지 않고 온통 가짜 보수가 태극기를 흔들고 있는 현실은 참혹할 따름이다. 진짜 보수는 어디에 있는가?

대한민국에 더는 보수라는 가치가 자리할 수 없도록 만드는 가짜 보수에 진짜 보수주의자들은 분노하고 있다.

아스팔트 우파또는 태극기 부대라고 불리던 소수의 수구세력이 박근혜 정부 시절을 거치며 관제 데모지원에 힘입어 세력을 키웠다. 이들 단체는 성 소수자와 난민,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혐오 발언을 일삼고 평화로운 대중 집회를 방해하는 것도 모자라 시민들에게 폭력을 가하거나 초등학교, 맹학교 학생들을 위협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보수의 품격은 존재하지 않고 가짜 보수의 난동만 넘쳐 나는 현실 속에서 진짜 보수의 품격은 대체 어디에 존재할까?

법과 원칙, 그리고 국가의 안위를 누구보다 중요한 가치로 삼고 있는 보수가 이 모든 것을 부정하면 진짜 보수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오늘도 거리에서 태극기와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까지 흔들며 서 있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가짜 보수주의 횡포에 수십년을 시달렸다. 보수가 진보 좌파와 다른 것은 아량과 포용, 관용이다. 인간은 불완전한 허점투성이 생물체여서 실수나 일탈(逸脫)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러니 서로 너그럽게 감싸 안고 가야 한다고 믿는 게 보수 철학의 핵심이다.

나라마다, 시대마다 보수의 색깔이 다르긴 하다. 하지만 반공·친미(親美)만이 보수가 아니다. 이승만·박정희를 비판하는 사람을 보수의 적으로 돌리는 것도 단편적이다.

이제 보수가 진짜 제 얼굴을 찾지 못 하면 갈수록 무너질 수밖에 없다.

보통 부유한 계층일수록, 그리고 부강한 국가일수록 현상 유지를 바라는 성향이 강해 보수적일 수 있다. 이는 좌·우파 분류법과는 또 다르다. 좌파든 우파든 일단 기득권에 올라서 있다면 당연히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 해 자연히 보수화하기 쉽다.

한국에도 본래적 의미의 보수가 존재할까. ‘가짜 보수말고 진짜 보수말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 자칭 보수주의자는 득실거린다. 하지만 보수활동가는 별로 없다.

우리는 격동의 정치 시대를 보내고 있다. 근래 정치는 광장에서 시작해서 다시 광장으로 이어지고 있다.

다들 현재 보수에 대해 고민을 하고 새로운 보수가 필요하다고 한다. 이런 가운데 새로운보수당이 창당해 보수는 무엇일까 고민하게 만든다.

보수주의자가 된다는 것은미지의 것보다는 익숙한 것을, 시도된 적이 없는 것보다는 시도해 본 것을, 신비로운 것보다는 사실을, 무한한 것보다는 제한된 것을, 멀리 있는 것보다는 가까이 있는 것을, 유토피아적 축복보다는 현재의 웃음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영국 보수주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오크숏(Oakeshott)의 말이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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