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빚은 걸작…웅장한 대협곡에 넋을 잃다
자연이 빚은 걸작…웅장한 대협곡에 넋을 잃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20.01.02 1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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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은둔의 왕국 무스탕을 가다(9)
이른 아침 로만탕을 출발해 해발 3700m의 산등성이를 따라 걷는 도중 이번 무스탕 트레킹에서 봤던 지질·지형 가운데 최대 경관지인 거대한 협곡을 마주했다.
이른 아침 로만탕을 출발해 해발 3700m의 산등성이를 따라 걷는 도중 이번 무스탕 트레킹에서 봤던 지질·지형 가운데 최대 경관지인 거대한 협곡을 마주했다.

박제된 역사의 현장

무스탕은 역사는 물론 고고학적으로도 흥미로운 지역 중 한 곳입니다. 깔리간다키강은 암모나이트 화석이 집중적으로 나오는데 바다 밑에 있던 지층이 급속하게 융기해 형성된 히말라야의 지질학적 특이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형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협곡에는 바다나 계곡에 볼 수 있는 미끄러운 작은 조약돌이 쌓여있어 오르고 내릴 때마다 힘들어 고생을 많이 합니다.

깔리간다키강과 그 지류의 강변에 있는 높은 절벽에는 수천년 전 사람이 살았던 혈거(穴居) 동굴이 수없이 많아, 이 기이한 골짜기의 첫 주민은 혈거인들이었을 것으로 추정케 합니다. 얼마 전 BBC 방송은 이 혈거 동굴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다룬 다큐멘터리를 방영한 적 있는데 그 조사에서 오래된 사람 뼈와 각종 생활 도구가 발견됐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토기와 약간의 유물이 발견된 것 말고는 뚜렷한 자취가 없어 이 혈거인들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갔는지, 그들이 나중에 외부인들에 의해 밀려났는지 아니면 그 훨씬 전에 사라졌는지 알 도리가 없는 그야말로 박제된 역사의 현장입니다.

 

로만탕이여 안녕~

이틀 동안 머물면서 돌아본 박제된 역사의 현장로만탕은 긴 은둔의 시간에서 깨어나 새 세상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것 같습니다. 변하지 않는 보석같이 남았으면 하는 생각은 나그네의 과한 욕심일 것입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멀고 먼 길을 힘들게 찾아와 아주 짧은 시간 머물렀지만 내 인생에 잊을 수 없는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로만탕을 떠나는 아침, 히말라야산맥에서 상쾌한 바람이 불어오고 이날도 어김없이 염소와 소 떼가 길거리를 가득 메웠습니다. 잔잔한 미소가 아름다운 주민들, 내게 천불(千佛)을 안겨 준 이름 모를 화백, 로만탕 전경을 보여줬던 노인 등 대문을 나오면서 그들을 떠올려 봅니다.

앞으로의 코스는 하산길이지만 올 때보다 험준하고 힘든 곳이 많으니 단단히 각오하라는 가이드의 주의를 들으며 우리 일행은 길을 나섰습니다. 나흘만 잘 견디면 그 어렵다는 무스탕 트레킹을 무사히 마칠 수 있다는 각오를 다지며 높지 않은 능선을 넘어 이 곳에 들어올 때 올랐던 언덕에 올라 마지막으로 로만탕에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야라마을로 가는 트레킹 도중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디마을에서 만난 현지 주민.
야라마을로 가는 트레킹 도중 점심을 먹기 위해 들른 디마을에서 만난 현지 주민.

오늘 목적지는 야라마을입니다. 해발 3700m의 완만한 경사를 올라 능선을 따라가는 길이라 그리 어렵지 않지만 크지도 작지도 않은 자갈이 깔린 급한 경사를 내려갈 때는 미끄러워 힘듭니다. 일행보다 앞서 걸었는데 어느 새 우리의 짐을 실은 말들이 따라왔고, 그 뒤로 멀리 일행들이 보입니다.

 

미국 그랜드캐니언 저리 가라

앞에 보이는 모퉁이만 돌면 새로운 모습이 펼쳐질 것만 같아 수직의 벼랑길을 겁도 없이 부지런히 걷고 있습니다.

그런데 잠시 후 거대한 협곡이 겹겹이 겹치면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막힌 지형이 나타났습니다. 무스탕의 콜라강과 디콜라강이 합류하는 지점, 좀 더 확실히 말하자면 콜라강 상류 지역인 이 곳은 지금껏 봤던 기암 절경 중 가장 아름답고 웅장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그랜드캐니언보다 더 엄청난 모습으로 붉은색과 검은색, 회색빛을 띤 기암과 형형색색 기기묘묘한 절벽은 그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거대합니다.

너무 웅장한 절경에 넋을 잃어 사진을 찍을 생각도 못 하고 그저 바라만 보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지형이 형성됐을까? 지구가 탄생할 때 인도판 충돌로 거대한 히말라야산맥을 솟아났다는데 그 때 이 곳에서 이런 신비로움이 만들어진 것일까? 히말라야산맥의 여러 지역을 다녔지만 이 곳처럼 신비로운 대자연을 본 적은 없습니다.

깊은 생각에 잠겨있는데 갑자기 사람 소리가 들려 정신 차려 보니 프랑스팀이 도착했습니다. 프랑스팀도 이 장관을 마주하자 감격했는지 서로 껴안고 환호합니다. 이런 순간을 함께할 동료가 옆에 있으니 살짝 부럽기도 했습니다.

얼른 카메라를 꺼내 들고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망원렌즈와 광각렌즈를 바꿔 껴가며 마치 병사들이 사열한 듯한 모습의 절벽과 웅장한 협곡 풍경 등을 수없이 촬영했습니다. 카메라뿐만 아니라 내 눈과 마음 속에도 이 절경을 담고 있습니다. ‘언제 또 이 곳에 올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어느 것 하나 놓치지 않고 기록하겠다는 마음으로 촬영에 몰두했습니다. 협곡은 방향을 조금만 바꿔도 모양과 색상이 달라져 더 황홀케 합니다.

조심스럽게 바위에 올라 사진을 찍고 있는데 프랑스팀이 카메라를 건네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합니다. 이곳저곳을 배경으로 여러 장 찍어줬더니 엄지를 치켜세웁니다.

손가락이 얼얼할 정도가 돼서야 카메라를 내리고 하산을 시작했습니다. 경사가 너무 심해 천천히 발길을 옮기는데 멀리 점심을 먹기로 한 장소인 디마을이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참 아름다운 마을입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기자>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디마을 전경.
언덕 위에서 내려다본 디마을 전경.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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