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직후 살기 위해 농사짓고, 민주화운동으로 위로 받다
4·3 직후 살기 위해 농사짓고, 민주화운동으로 위로 받다
  • 고경호 기자
  • 승인 2019.12.30 16: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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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 30일
‘4·3피해자 회복탄력성 연구’ 발간

제주4·3 직후 도민들은 생존을 위해 땅을 일구면서 공동체를 회복했고, 민주화운동이 발발하고 나서야 아픔을 치유받기 시작했다.

제주연구원 제주학연구센터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4·3피해자 회복탄력성 연구’(연구책임 김종민 전 국무총리 소속 4·3위원회 전문위원) 보고서를 30일 발간했다.

회복탄력성은 외부의 힘에 의해 변형된 물체가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성질을 뜻한다.

그동안 4·3 연구는 분단과 냉전 과정에서 이뤄졌던 정치사회적 맥락과 진상규명 등에 초점이 맞춰져 왔지만 피해자들이 어떻게 삶을 회복하고 유지했는지에 대한 회복탄력성 조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진은 4·3 피해자 11명의 생애주기를 4·3 직후와 민주화운동 이후 등으로 나눠 조사했다.

조사 결과 4·3 직후 제주도민들은 ‘가정 경제’에 몰두한 것으로 나타났다.

살아남기 위한 필수 조건이 바로 ‘경제’였고, 공공기관의 취업이 제한된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직업은 농업뿐이었다.

이에 따라 4·3 직후에는 수익이 낮은 잡곡 농사를 지으며 절대 빈곤 상태에 놓였었지만 60년대 들어 감귤 농사를 시작하면서 고수익을 얻게 되자 경제적으로 안정됐다는 게 연구진의 분석이다.

이 시기 회복탄력성의 유형은 능동과 조력자로 나뉜다.

능동적 회복탄력성에는 스스로 사회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일본 밀항을 택하거나 4·3 당시 가장을 잃고 어머니를 중심으로 절약하면서 살았던 삶, 연좌제를 피하기 위한 본적 이동, 기술 연마를 통한 진로 개척 등이 꼽힌다.

또 조력자를 통한 회복탄력성에는 결혼이나 재혼, 일가친척의 지원 등 대부분 가족의 힘을 빌려 삶을 일군 경우가 포함된다.

가족과 농사를 통해 다시 공동체를 일궈낸 도민들은 1987년 민주화운동이 시작되면서 4·3의 아픔을 치유받기 시작했다.

이 시기 시민 역량이 강화되고 공동체 의식이 변화되면서 4·3 문제에 대한 인식이 능동적이고 의식적으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 이후에는 4·3추념일 제정, 제주4·3평화공원 조성 및 평화재단 설립 등 제도적인 지원이 강화됐고, 유족 및 생존자들이 위령제에 참석하기 시작하면서 심리적으로 안정됐다. 

특히 제주4·3특별법 제정과 진상조사보고서 확정, 고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는 4·3 피해자들의 회복탄력에 가장 크게 작용했다는 게 연구진의 분석이다.

김종민 전문위원은 “4·3이후 정치, 사회적 변화 속에서 피해자 개인이 어떤 상호작용을 통해 삶을 회복해 왔는지, 혹은 현재에도 회복되지 않았는지에 대해 파악했다”며 “결과적으로 사회 환경이 직접 개인의 회복탄력성에 영향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사회 환경이 공동체 의식과 사회제도에 영향을 주고, 이것이 다시 개인의 회복탄력성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연구 과정에서 피해자들은 현재 제주사회가 풀어야 할 숙제로 4·3 특별법 개정을 꼽았다”며 “군법회의를 무효화해 전과자 낙인이 지워지기를 희망했고, 또 4·3교육이 지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문했다”고 강조했다.

고경호 기자  kkh@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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