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맞닿은 고원, 사암 절벽에 숨은 ‘신의 집’
하늘과 맞닿은 고원, 사암 절벽에 숨은 ‘신의 집’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12.26 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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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은둔의 왕국 무스탕을 가다(8)
‘신의 집’이란 뜻을 지닌 참파라캉(Champa Lakhang) 동굴생활유적지 전경. 붉은 사암 절벽 곳곳에 있는 수 많은 옛 혈거(穴居) 유적이 신비스러운 모습을 자아낸다.
‘신의 집’이란 뜻을 지닌 참파라캉(Champa Lakhang) 동굴생활유적지 전경. 붉은 사암 절벽 곳곳에 있는 수 많은 옛 혈거(穴居) 유적이 신비스러운 모습을 자아낸다.

해발 3800m 넘는 연중 건조 지대

무스탕을 지도에서 보면 지형이 티벳 쪽으로 쑥 들어가 있는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이는 로(Lo) 왕국 뒤쪽의 산맥이 그런 형태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1960년 에베레스트산의 소유권을 놓고 네팔과 중국 간 외교적 분쟁이 있었고, 그 결과 1963년 두 나라 사이에 국경협정이 맺어져 무스탕을 포함한 네팔의 북쪽 국경이 이 때 완전하게 결정됐다고 합니다.

무스탕은 히말라야 고산준령이 자세를 낮춰 티벳고원으로 변해 가는 중간지대입니다. 무스탕의 독특한 풍광과 생태도 여기에 기인한다고 합니다. 고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여름철 몬순 구름도 무스탕 남쪽에 늘어서 있는 히말라야의 높은 산들에 가로막혀 비가 적게 내리므로 연중 무척 건조해 식물들이 자라기가 어렵답니다. 그래서 하무스탕 산자락에서는 무성한 산림을 볼 수 있으나 상무스탕으로 오를수록 식물상이 엷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로만탕이 해발 3809m이지만 마을 곳곳에 자작나무들이 자라고 있는 것을 볼 때 계곡이나 마을, 물이 있는 곳에서는 나무가 자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유명 동굴유적지 추사로 마을로

염소 떼가 좁은 길을 완전히 점령해 오히려 사람들이 길 옆으로 피해 서야 합니다. 꼭 개미 마을의 아침 모습과 비슷합니다. 무스탕 전체 마을들이 이 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로만탕에 도착한 뒤 욕심을 내 여기저기 돌아다녔더니 피곤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으나 고도가 높아서인지 갑자기 숨이 가빠져 깊은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새벽에 숙소 옥상에 올랐는데 먼저 올라왔던 한 일행이 어젯밤 날씨가 맑아 별들이 장관이었다고 합니다. 별을 찍기 위해 대형 트라이포드(삼각대)까지 힘들게 챙겨왔는데 사용할 기회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오늘 일정을 시작하려고 밖으로 나와 보니 어제 봤던 염소 떼와 소들이 풀밭으로 가는지 또 길을 완전히 점령했습니다. 오늘은 동굴유적지로 유명한 추사로 마을을 거쳐 티벳의 국경지대까지 올라갈 예정입니다. 마을을 벗어나면 또 다른 세계를 만난 것처럼 흥분됩니다. 잠시도 한 눈 팔 틈도 없고, 곳곳이 신비롭습니다.

바람에 펄럭이는 타루초 너머로 웅장한 히말라야산맥이 보인다.
바람에 펄럭이는 타루초 너머로 웅장한 히말라야산맥이 보인다.

포장은 안 됐지만 잘 다져진 길을 한참 걷는데 길 가운데로 돌무더기가 길게 쌓여있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마니석(불경을 새긴 돌)을 쌓아 놓은 것입니다. 이번 무스탕 트레킹에서 본 마니석 탑 중 가장 긴 것 같습니다. 마치 성을 쌓은 것처럼 보이는 마니석 무더기가 있는 이 지역은 마니롬이라고 합니다.

마침 주변에 집이 있어 다가갔더니 집주인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며 우리 일행을 반깁니다. 집주인의 환대 덕분에 집 지붕에 올라 주변 전경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멀지 않은 곳에 붉은 사암 지대가 펼쳐졌는데 장관입니다. 기기묘묘한 사암 곳곳에 구멍이 숭숭 뚫려 있는데 바로 옛 혈거(穴居) 시대 생활터이자 신앙의 장소이기도 했던 동굴들이랍니다. 가이드는 동굴은 나중에 천천히 둘러볼 계획이니 일단 국경지대를 먼저 다녀오자며 길을 재촉합니다.

 

인간이 처음 만든 아파트?

산 능선을 굽이굽이 돌아 올라서니 넓은 초원 지대가 펼쳐집니다. 어쩜 이렇게 환경이 급변할 수 있을까.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멀지 않은 곳에 큰 건물 공사가 한창이고 그 바로 앞에 작은 표지석 하나가 세워져 있습니다. 바로 이 곳이 중국과 네팔의 국경지대입니다. 신축 중인 건물은 중국 세관이라는데, 네팔 쪽으로는 건물이 하나도 없습니다. 중국이 무스탕과 포카라를 잇는 도로를 건설해 준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이 곳을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대단한 야심입니다. 좀 씁쓸한 기분을 느끼며 하산을 서둘렀습니다.

다시 발길을 재촉해 도착한 추사로 마을 동굴지대. 마을 안으로 들어서니 사방이 붉은 사암 기둥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드디어 이 거대한 동굴집 탐사를 시작했습니다. 미로와도 같은 동굴은 얼마나 길게 연결됐는지 개방된 곳만 둘러봐도 한참이 걸립니다. 가이드는 아직 답사가 안 된 동굴이 많다이 동굴이 인간이 처음 만든 아파트가 아니겠냐고 합니다. 4~5층으로 연결된 굴 속에서는 언제 것인지 모를 각가지 생활 도구도 눈에 띕니다. 여기가 바로 신의 집이란 뜻을 지닌 참파라캉(Champa Lakhang) 동굴생활유적지입니다.

마을 가까이 있는 동굴에는 지금도 사람이 살고 일부는 사원으로 이용한답니다. 멀리 언덕 위에는 오래된 사원터와 초르텐(불탑)이 있는데 히말라야의 거센 바람에 깎이고 깎여 뼈대만 앙상하게 남았습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기자>

중국과 네팔의 국경 표지석 너머로 중국 세관 건물이 공사 중이다.
중국과 네팔의 국경 표지석 너머로 중국 세관 건물이 공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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