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외침의 소리
제주4·3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외침의 소리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12.24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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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희.제주시 용담2동

제주도민이면서도 4·3의 아픔을 단 몇 줄의 문구로 이해했던 지난날의 나를 통분과 회한의 마음으로 되돌아본다.

“1948년 남한 단독선거 저지를 위해 194843일 새벽 2시 남조선노동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도내 경찰지서들 가운데 12개를 공격하면서 촉발된 무장대와 군경토벌대 간의 무력 충돌.”

고백하건대 이것이 최근까지 나의 4·3에 대한 역사 지식의 전부였다. 과거와 현재의 무게를 지탱했고 미래를 이끌었던 역사의 진정한 주인, 바로 소박하고도 무고했던 희생자들을 망각한 것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1947313·1절 기념행사. 어린아이가 기마경찰 말발굽에 치여 다치는 사고가 일어난다. 경찰이 그대로 지나친다. 안 그래도 미군정이 제주도민의 지지를 받는 인민위원회를 탄압하는 과정에서 군중의 마음 속에 키웠던 켜켜이 쌓인 불만은 터져 나오고, 이에 무장경찰이 강경 대응한다. 여기에 일제 경찰과 서북청년회 등 우익단체의 탄압이 더해져 제주도민들의 반감은 제주도 전역에 불길처럼 번져나간다.

이승만 정부는 중산간 마을의 주민들이 무장대에 도움을 제공하리라 가정, 194811월 제주도에 계엄령을 선포하고 남로당과 무관한, 그야말로 무고한 마을 주민 대량학살계획을 군에 지시한다. 이것이 4·3이다.

19991226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통과됐다.

정부의 진상조사가 착수되고, 진상조사보고서 확정에 따라 20031031일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제주4·3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무고한 희생자들의 유족들 보상 문제, 억울한 수형자들의 명예회복 문제, 행방불명되거나 후유장해가 남은 이들 문제!

제주4·3 역사의 뒤안길에서 무고한 희생자들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공동체를 많은 관심을 가지고 돌아봐야 한다.

진실은 빛이기에, 우리 앞에 몇 백 광년이나 떨어져 있다 해도 언젠가는 우리의 마음 속에 와 닿으리란 믿음을 굳게 견지해야만 한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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