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현남, 봉서방’ 인사
‘연현남, 봉서방’ 인사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9.12.2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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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해 시인은 “역사는 ‘지나간 과거’가 아닌 ‘앞선 과거’, 미래로 돌아오는 내 삶의 문제”라고 썼다.(박노해의 걷는 독서)

요즘 역사에 관심을 갖고 ‘조선왕조실록’을 찾는 사람들이 느는 것도 그렇게 ‘앞선 과거’에서 교훈을 얻고자 함일 것이다.

이 실록(實錄)의 백미(白眉)는 사실을 그대로 기록한 뒤 특별한 경우 그 말미에 적어넣은 사관(史官)의 촌평이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인물평은 압권이라 할만하다.

‘연현남 봉서방’이야기도 그중의 하나다. 문종(文宗)때 곡산부원군 연사종(延嗣宗)의 아들 延경과 찬성 곽추(郭樞)의 사위 奉안국은 아버지와 장인의 덕으로 임금의 특은을 입어 벼슬을 한 인물들이다. 연경과 봉안국이 임금을 알현했다. 임금이 “네가 누구냐”고 묻자 연경은 “곡산부원군의 현남입니다”라고 했고, 봉안국은 “곽 찬성의 서방입니다”고 답했다고 사관은 썼다.

▲현남(賢男)과 서방이란 무슨 말인가. 현남이란 말은 남의 자식을 높여 부르는 말이고 서방 역시 남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않고 높여 부르는 말이다.
이 실록의 인물평을 쓴 사관은 이 두 사람에 대해서 현남이란 말과 서방이란 말의 뜻도 모르고 자기가 자기를 높여 부르는 ‘팔푼이’라고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연유해 조선시대에는 무식한 사람을 조롱조로 부르던 별칭으로 ‘연현남’ 혹은 ‘봉서방’이라고했다.
학문과 견식이 없어 현남이나 서방이라는 말조차 존칭(尊稱)인 줄도 몰랐던 인물들이 관직에 오른 것을 비웃는 사관의 이런 인물평은 실록에 적어놓지 않았다면 아마 영원히 알려지지 않았을 이야기다.

조선이 망하고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것은 이렇게 어느 것이 서까래 재목이고 어느 것이 대들보 재목인지는 가리지도 않았던 정실인사 때문이 아닐까.

▲연말은 ‘인사의 계절’이다. 제주도와 양 행정시, 교육청을 비롯해 일선 주요 행정기관의 연말은 이 때문에 더욱 예민해지는 시기다.
인사철이면 출처를 알 수 없는 ‘썰’이 나돈다. 또한 인사철만 되면 동료, 선후배와 함께 술 마시러 나가는 경우가 많아진다. 서로 인사와 관련된 소문을 얻기 위해서다.

오래된 방식이지만 중요한 정보일수록 직원들의 입에서 입을 타고 돌아다니기 마련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지나고 보면 틀린 정보도 많지만 진위 여부와 상관없이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연말과 새해 초에 단행되는 제주도 사무관 승진자를 비롯해 4~3급 승진자들에 대한 자천타천 이름들이 벌써부터 나돌고 이에대한 하마평이 무성하다.
하마평에는 새해 봄에 예정인 지방공기업 인사까지 더해졌으니 아랫사람들은 윗선의 눈치를 보며 ‘라인을 타느라’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인사철에 노심초사하다보면 건강에 무리를 준다. 이 땅의 대다수 공사(公私)직 봉급쟁이들의 아픈 현실이다. 
그런데 인사철은 왜 하필 차디찬 겨울 날, 매해 동지(冬至)때 일까.

어제는 동지였다. 이 날이 지나면 내려갔던 태양이 올라오면서 밤은 줄어들고 낮이 늘어나기 시작한다. 때문에 선조들은 동지를 ‘다음 해가 열리는 날(亞歲)’ 내지 ‘작은 설’로 여겼다. 동지를 기점으로 그 해의 기운은 사라지고 새해의 운(運)이 성큼 다가선다고 한다. 그래서 ‘동지 인사’를 하는 걸까.

어제는 새벽부터 내리는 겨울비, 그리고 잔뜩 흐린 날씨로 2019년 마지막 동지 보름달을 보려던 내 희망을 앗아갔지만 그래도 포근한 날씨가 좋았다.
이제 이 한 해도 일주일 남았다. 제주의 미래를 위해선 현대판 연현남, 봉서방 인사는 없었으면 좋겠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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