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원에 숨겨진 ‘염원의 평원’
고원에 숨겨진 ‘염원의 평원’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12.19 16: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6부. 은둔의 왕국 무스탕을 가다(7)
추상을 출발한 지 5일 만에 우리 일행은 드디어 무스탕의 수도 로만탕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성문을 연상시키는 큰 문이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끈다.
추상을 출발한 지 5일 만에 우리 일행은 드디어 무스탕의 수도 로만탕에 도착했다. 입구에는 성문을 연상시키는 큰 문이 세워져 있어 눈길을 끈다.

무스탕을 상무스탕(Upper Mustang)과 하무스탕(Lower Mustang)으로 나누기도 하는데 상무스탕은 만탕(Manthang)과 짜랑(Tsarang)을 중심으로 한 로(Lo)왕국 지역을, 하무스탕은 툭체·마르파·좀솜·까그베니 등지를 포함하는 지역을 일컫는다고 합니다.

상무스탕 인구는 대략 6000명으로, 전통적으로 무스탕이라고 하면 깔리 간다키강의 가장 북쪽에 있는 상무스탕의 로 왕국을 말합니다.

로 왕국의 수도는 만탕이며 그곳 주민들을 현지에서는 로바(Lobas)라고 부릅니다. 로 왕국 명칭의 유래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어떤 이들은 티벳어로 남쪽을 뜻하는 로(Loh)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보고 있으나 근거는 없습니다. 만탕이란 티벳어로 염원의 평원’(Plain of Aspiration)이란 뜻이랍니다. 무스탕이라는 이름은 이곳 만탕이 서양인들에 의해 소개되며 마스탕’(Mastang)으로 불리다가 -스탕’(Moostang)으로, 다시 무스탕’(Mustang)으로 와전된 것이라고 합니다.

상무스탕과 하무스탕은 같은 티벳 문화권이면서도 언어와 생활 방식, 종교 등에서 분명한 차이를 보여준다고 합니다. 하무스탕 지역의 타칼리족(Thakalis)은 상무스탕의 로바들과는 다른 티벳어의 방언을 쓰며, 과거에 툭체와 마르파를 중심으로 깔리 간다키강을 통한 남북 교역을 장악했던 상업 부족이랍니다.

해발 3000m를 크게 웃도는 지역에 위치한 이곳 로만탕은 생각했던 것보다 아주 작은 마을입니다. 그래도 옛 왕국의 수도라 꽤 큰 도시일 것이라고 상상했는데 지금까지 오면서 본 몇 개의 마을과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우리 일행은 마치 개선장군처럼 로만탕을 향해 걷고 있습니다. 프랑스팀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행렬을 이루며 내려서자 언덕 위에 커다란 문이 서 있습니다. 마치 성문처럼 서 있는 큰 문은 멀고 먼 길을 달려온 나그네를 반깁니다.

일행들은 조성한 지 얼마 안 돼 보이는 정문 입구에 모여 서로 격려하고 축하하며 돌담이 아름다운 성 아닌 성으로 들어갔습니다. 옛 건물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고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사용하기 위한 수로가 마을을 빙 두르고 있습니다. 이 물은 마을 주민은 물론 가축들도 함께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숙소에 도착해 늦은 점심을 먹고 나자 크지 않은 로만탕을 돌아보기 위해 밖으로 나갔습니다. 마을 곳곳에서 주민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너무나 순수해 보이는 그들은 눈이 마주칠 때면 인사를 건네와 오래 알고 지낸 이웃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을은 좁디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졌고 곳곳에 초르텐(불탑)이 세워져 있습니다. 또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듯한 갖가지 생활 도구가 길가에 놓여있습니다. 도시 전체가 한 채의 건물처럼 느껴질 만큼 서로 연결돼 지어졌고 전부 돌과 흙벽입니다.

먹이를 찾아 멀리 나갔다가 돌아오는 염소 떼가 로만탕 시내를 가득 메우고 있다.
먹이를 찾아 멀리 나갔다가 돌아오는 염소 떼가 로만탕 시내를 가득 메우고 있다.

로만탕 전경을 촬영하고자 높은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데 나이가 꽤 지긋해 보이는 주민이 우리 일행을 부릅니다. 뭐라고 말을 건네는 그 노인은 우리가 알아듣기 어려워하자 손짓으로 한 건물에 들어가 보라고 합니다.

무턱대고 들어가기도 그래서 머뭇거리다가 노인에게 떠밀리다시피 집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창문 하나 없이 어두컴컴한데 계단을 몇 개 오르자 옥상입니다. 그런데 이 옥상에 올라가니 커다란 불탑 5개와 사원, 그리고 주변 건물이 한 눈에 보입니다. 덕분에 생각지도 않게 로만탕 전경을 사진에 담을 수 있었습니다.

집주인인 그 노인은 이곳에서 로만탕 전체를 볼 수 있다함께 사진을 찍자고 합니다. 뜻밖의 친절에 어떻게 해야 할지 살짝 걱정이 들던 차에 계단을 내려와 다른 방을 들어갔더니 갖가지 골동품이 진열돼 있습니다.

무슨 전시물인가 했더니 다 파는 물건이랍니다. 오래된 듯한 금불상을 골라 노인에게 가격을 물었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어 계산기를 꺼내 들고 금액을 찍어달라 했더니 그마저도 못 합니다. 답답해서 돈을 꺼내 들자 노인은 그제야 지폐 몇 장을 집어 듭니다. 속으로 이 양반이 다 알면서도 능청을 부리는 게 아닌가하고 의심이 들기도 했습니다. 나중에 현지 가이드에게 들었는데 그 노인은 실제로 계산이 서툰 사람이랍니다.

다시 이곳저곳을 둘러보는데 가이드가 한 건물을 가리키며 저 곳이 왕궁이고 지금 그 안에 왕이 있다고 합니다. 왕궁이라 화려할 줄 알았는데 크기만 좀 클 뿐 일반 건물과 비슷한 모습입니다. 무스탕 왕국은 네팔에 속해 있지만 지금까지 왕국체제를 유지하고 있답니다.

왕궁 옆으로 큰 사원이 있어 들어가 보니 마침 벽에 그려진 그림들을 복원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천불(千佛)을 꼼꼼히 그리고 있어 사원 안은 페인트 냄새가 진동합니다. 사진은 일체 찍을 수 없다고 하고 수리 중이니 조심히 다니랍니다.

몇 시간 다녔더니 로만탕을 거의 다 둘러봤습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인지 돌아본 것을 바로 메모하지 않으면 금방 잊어버려 잠시 쉬는 시간에 얼른 메모하고 있습니다.

해가 질 무렵 로만탕에 들어올 때 봤던 붉은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 밭이 생각나 찾아갔습니다. 마침 멀리 설산에 구름도 걷혀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었습니다. 숙소로 되돌아오는 길에 먹이를 찾아 멀리 나갔다가 돌아오는 염소 떼를 볼 수 있었습니다. 길을 가득 메운 염소 떼를 따라 숙소로 향합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기자>

한 마을 주민이 안내해 준 건물의 옥상에 오르자 로만탕 시가지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한 마을 주민이 안내해 준 건물의 옥상에 오르자 로만탕 시가지를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