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천문화마을
감천문화마을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12.17 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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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신 수필가

뉴욕타임스가 선정한 ‘꼭 가봐야 할 세계 명소’ 52곳 중 하나로 꼽힐 정도로 많이 알려진 곳, 부산에 있는 감천문화마을을 찾았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사람들이 북적거리니 중국의 단체 관광객들은 덩달아 신이 났는지 목소리가 커진다. 제주에서도 중국인들의 목소리가 유달리 크게 느껴질 때가 있다.

차가 없는 거리여서 마음은 편하다. 느릿느릿 걸어가니 시선 둘 곳이 많다. 곳곳에 설치된 미술 작품들과 아기자기한 작은 가게들이 손짓한다. 벽화와 조형물들이 모두 공간 예술이라 과연 문화마을이다 싶다. 작은 공방들과 카페, 음식가게들이 많고, 체험을 할 수 있는 공방들도 있다. 포토존 앞에서 줄을 서서 사진을 찍기도 한다. 유난히 긴 줄이 있어서 다가가 보니 어린왕자가 마을을 내려다보는 형상이 있는 곳이다. 한 컷 찍고 싶었지만 줄이 너무 길어서 지나쳤다.

이 마을은 형형색색의 작은 상자 같은 집들이 빼곡하다. 파스텔 톤 색감 때문인지 복잡하다는 생각보다는 정겹고 따뜻하게 느껴진다. 비탈을 등지고 있어서 집들이 계단처럼 층층이다. 나름 질서 있게 같은 방향으로 서 있고, 앞집이 뒷집의 시야를 가리지 않는 구조다. 지형을 잘 활용했고 모두 단층이니 가능한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에 피난 와서 집 한 칸 마련을 위해 비탈에 판잣집을 지었던 그들의 삶을 생각하면 오늘 하루가 더욱 감사해진다. 처음에 이곳에 정착했던 많은 사람들은 세월과 함께 떠나갔지만, 그 판잣집들은 세월을 먹으며 슬레이트, 슬래브 집으로 바뀌면서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골목길은 한 사람이 걸어가면 족할 만큼 폭이 좁다. 이웃집의 목소리까지 들릴 것 같다. 감천동의 역사에는 감천(甘川)의 옛 이름은 감내(甘內)라고 하였고, ()은 검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을 뜻한다.’고 나와 있다. 당시의 골목길과 감()으로 불리던 구획들은 초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어서 신기하기까지 하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이곳을 갈아엎어 새로 집을 지었으면 오늘의 감천문화마을은 없었을 것이다. 과거를 그대로 살리며 마을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오늘의 감천문화마을을 만들어낸 것이다.

잉카 문명의 영원한 수수께끼 마추픽추가 산 위에 지어진 것과 견주어 감천마을을 한국의 마추픽추라고 부르는 이도 있는데, 오히려 그리스의 산토리니와 비슷한 분위기이다.

군것질 할 가게들이 즐비하다. 어묵가게 앞에 멈추어 선다. 거리에서 어묵 꼬치를 하나씩 들고 먹는다. 먹는 것도 관광이다. 부산의 명물 씨앗호떡,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 수학여행을 온 여고생들 마냥 모두가 하하호호 웃음꽃을 피운다. 관광지에 사는 주민들을 배려하는 관광객의 예의를 잠시 잊었다. 너무 떠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소리가 큰 중국인들만을 탓할 일은 아니다. 감천문화마을 곳곳에는 떠들지 말 것, 쓰레기를 버리지 말 것, 함부로 생활공간을 들여야 보지 말 것등의 관광객 예의를 지켜달라는 문구들이 붙어있다.

다음에 다시 찾을 때는 보다 더 느릿느릿, 조용히, 골목골목을 걷고 하나하나의 예술작품들과 눈 맞춤을 더 많이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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