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량한 고요 속을 걸어 ‘왕국의 수도’에 닿다
황량한 고요 속을 걸어 ‘왕국의 수도’에 닿다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12.12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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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은둔의 왕국 무스탕을 가다(6)
무스탕 왕국의 수도 로만탕으로 향하는 도중 본 거대한 초르텐(불탑).
무스탕 왕국의 수도 로만탕으로 향하는 도중 본 거대한 초르텐(불탑).

바람을 막기 위한 것일까? 아니면 자연적으로 쌓아진 것일까?’

마치 방파제처럼 쌓인 긴 토성이 마을로 불어오는 바람을 막고 있습니다. 히말라야에서 불어오는 차갑고 거센 바람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한 방풍지(防風地) 같기도 합니다. 그리 넓지 않은 마을에 새 건물을 짓고 있는데 아마도 외지인 숙소인 듯 합니다. 이번 트레킹 중 가장 짧은 거리를 걸어 일찍 차랑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배터리 충전입니다. 무스탕의 대부분 마을이 태양열로 전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전력이 부족한 편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앞다퉈 스마트폰을 충전하기 위해 자리를 잡아야 합니다.

날씨도 좋고 일찍 도착해 푹 쉬었으니 저녁에는 별 사진을 찍어볼 생각이었는데 막상 저녁이 되자 비가 내려 그냥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보니 날씨가 맑아 차랑마을이 한 눈에 보이는 지붕에 올랐습니다. 멀리 구름 위로 설산이 얼굴을 잠깐 내비칩니다.

오늘 우리 일행은 나흘 동안의 강행군 끝에 무스탕 왕국의 수도 로만탕으로 갑니다. 흥분된 마음으로 출발해 마을을 지나는데 돌담 너머로 먹음직스러운 사과가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무스탕은 사과가 유명하다고 하니 맛이나 보자며 몇 개를 사서 일행끼리 나눠 먹었습니다.

마을을 벗어나 깊은 계곡으로 내려가다 보니 군인들이 훈련 중인지 모여있습니다. 아마 무스탕이 티벳과 국경지대여서 부근에 군부대가 있는 모양입니다.

천천히 언덕을 오르는데 뒤에서 짐을 실은 말들이 올라오다 힘이 든지 잠시 쉽니다.

저 많은 짐을 지고 오르는데 얼마나 힘들까.’ 길게 뻗은 길을 혼자서 뚜벅뚜벅 걷다 보니 이런저런 생각에 잠깁니다.

이렇게 혼자 걸을 때면 상대는 없지만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 같답니다. 서로 마주 보며 이야기하는 것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 같습니다.

차랑마을을 벗어나 협곡 위에 올라서니 멀리 히말라야 설산이 신비스러운 자태를 드러낸다.
차랑마을을 벗어나 협곡 위에 올라서니 멀리 히말라야 설산이 신비스러운 자태를 드러낸다.

먼 산등성이에 걸린 구름도 산이 너무 높아 넘어가지 못 하는지 산자락을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넓은 벌판, 곧게 뻗은 길에는 걷는 사람도 달리는 차도 없습니다.

별별 상상을 하며 한참을 걷는데 멀리 짐을 실은 말들의 목에 건 방울이 딸랑거리는 소리가 들립니다. 얼마나 조용했으면 꽤 멀리 떨어졌는데도 그 소리가 들릴까.

도시에 살며 자동차 소음과 미세먼지에 찌든 청력(聽力)과 시력(視力)이 이 조용한 자연 속에 있으니 살아나나 봅니다.

언제 왔는지 말을 끌고 온 마부가 저를 보더니 엄지손가락을 치켜 올립니다. 일행보다 한참 앞서 있어 잘 걷는다는 표시인 듯합니다. 그는 손짓·발짓으로 근처에 좋은 곳 있다고 알려주며 황급히 걸어갑니다. 너무 무리할 것 같아 방울 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리를 두고 따라갔습니다.

한참 가던 말들이 멈춰 선 곳에는 거대한 초르텐(불탑)이 서 있습니다. 좋은 곳이란 게 이 초르텐을 말한 것 같습니다. 넓은 초원에 세워진 초르텐은 이 길을 오가는 사람들에게 위안의 장소가 되는 성소인 듯합니다. 잠시 앉아 메모하는 사이 프랑스팀이 도착해 시끄러워지자 다시 발길을 재촉했습니다. 일행은 아직 보이지 않습니다.

주변 변화도 없이 한결같은 초원지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외로운 길, 나그넷길입니다. 이 지역은 마을과 거리가 멀어서인지 그 흔한 양이나 염소도 보이지 않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걷고 있는데 멀리 말 몇 마리가 풀을 뜯는 모습이 보입니다.

가까이 가 보니 팻말 하나가 보이고 그 너머 조립식 주택들이 있습니다. 마을인가 했는데 군부대입니다. 오는 길에 봤던 군인들의 부대인 모양입니다.

가이드 한 사람이 급히 쫓아오더니 일행이 올 때까지 앞에 보이는 언덕에서 잠시 쉬고 있으라고 합니다. 마랑 라(해발 4350m)라고 불리는 그 언덕에 올라서자 멀리 로만탕이 보입니다. 아마도 로만탕이 보이는 이곳에서 무스탕 왕국의 수도 입성을 축하라도 할 모양인지 뒤따라온 프랑스팀도 모여 있습니다.

얼마 후 일행이 도착하자 그동안 힘든 코스를 오느라 고생했다며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눈 앞에 보이는 로만탕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계속>

<서재철 본사 객원 기자>

마랑 라(해발 4350m) 언덕에 오르자 멀리 무스탕 왕국의 수도 로만탕이 보인다.
마랑 라(해발 4350m) 언덕에 오르자 멀리 무스탕 왕국의 수도 로만탕이 보인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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