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우리말로 기록된 ‘제주섬 민요’
1930년대 우리말로 기록된 ‘제주섬 민요’
  • 제주일보
  • 승인 2019.12.12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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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나라 제주도의 민요(1934)

1934년 조선중앙일보 수록 연재물
현장조사 수집 민요 60여 수 소개
신문스크랩철(1934, 제주항일기념관 소장) 전설의 나라 제주도의 민요 1회차와 2회차 부분.
신문스크랩철(1934, 제주항일기념관 소장) 전설의 나라 제주도의 민요 1회차와 2회차 부분.

몇 해 전 서울 출장길에 잠시 짬을 내어 전에 자주 다니던 단골 헌책방에 들렀다. 업무 때문이라기보다는 간만에 인사차 우연히 들른 셈인 데, 그 곳 사장님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반겨 주셨다. 내게 꼭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서 연락을 하려던 참인데 마침 잘 왔다고 하셨다. 평소 진중한 스타일인 분이 그리 말씀하시니 ~ 뭔가 있다싶었다.

안쪽 깊숙한 곳에서 검은 비닐에 쌓인 뭔가를 꺼내 내게 보여 준 건 낡은 서류철이었다. 일단 연대는 있어 보이는 물건이라 기대감을 갖고 중간 부분을 펼쳐 보니, 예상과 달리 낡은 신문을 스크랩해서 철해 놓은 거였다. 무슨 신문인지도 도통 알 수 없게 기사 부분만 오려 놓은 터라 아쉬움이 컸지만 종이의 질이나 활자의 모양, 한글의 표기 방식 등을 보고 가슴이 설레기 시작했다.

신문스크랩철(1934, 제주항일기념관 소장) 고유섭 선생의 우리의 미술과 공예 부분.
신문스크랩철(1934, 제주항일기념관 소장) 고유섭 선생의 우리의 미술과 공예 부분.

몇 쪽을 더 넘겨보니 등장하는 필자들의 이름이 예사롭지 않았다. 손진태·백남운·고유섭·노천명·구본웅 등 일세를 풍미한 명사들의 글과 시가 수록되어 있었다. 그 필진들을 보고서 바로 매입하기로 결정했다. 이 정도면 소장할 가치는 충분하다는 판단이었다. 그런데 가격이 문제였다. 시리즈로 연재된 글을 모두 스크랩한 거라 귀한 물건이라며 몸값을 한껏 부르신다.

머리로는 조정이 필요하긴 한데하는데 가슴은 이미 사랑에 빠졌으니 협상이 순조롭지 못할 것은 당연했다. 결국 조금 조절하는 선에서 항복하고 말았다. 일단 셈을 치르고 나서 찬찬히 살펴보다 보니, 귀한 놈과 만났다는 기쁜 마음에 소심하게 콩콩대던 심장이 갑자기 쿵쾅대기 시작했다. ‘이런, 이런, 이런.’

전설의 나라 제주도의 민요 최종회 20회차 부분.
전설의 나라 제주도의 민요 최종회 20회차 부분.

그 이유는 이 신문철의 시리즈 가운데 바로 傳說(전설)의 나라 濟州島(제주도)民謠(민요)’가 수록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조선일보·동아일보와 함께 조선의 3대 일간지로 자리매김한 조선중앙일보(朝鮮中央日報)1934519일부터 610일까지 모두 20(21꼭지)에 걸쳐 수록된 연재물이다. 저자는 김동환의 국경의 밤에 앞서 발표되어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서사시로 평가 받고 있는 소녀의 죽음을 지은 시인 유엽(柳葉 1902~1975 筆名)이다.

그의 본명은 유춘섭(柳春燮)으로 1920년 김우진·조명희 등과 우리나라 최초의 연극단체인 극예술협회를 조직하고 전국 순회공연에 나섰던 연극인이자, 양주동·백기만 등과 1923년 시 전문 동인지 금성(金星)’을 창간해서 함께 활동했던 시인이기도 하다. 그는 시와 연극 외에도 성악과 기악 등 다방면에서 뛰어났던 인재로, 1925년에 출가하여 법명이 화봉(華峰)인 스님이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1934년 제주도에 머물면서 현장조사를 거쳐 겨우 수집한 87()의 민요 가운데 60여 수를 조선중앙일보에서 소개한 것이다. 저자는 당시 조사를 시작한 지 2주 만에 제주경찰서의 검속(檢束)을 당해 3일 만에 추방명령을 받고 쫓겨난 까닭에 좀 더 충실한 조사를 못한 것을 무척이나 섭섭해 하면서 후일을 기약하고 있다.

1930년대 우리말로 기록된 당시의 제주도 민요에 대해 관심 있는 분들에게 꼭 필요한 자료일 것이다.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데이터베이스(db.history.go.kr)에서도 비록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는 열람할 수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란다.

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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