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 아픔을 딛고 도약하는 제주 흑우
역사 속 아픔을 딛고 도약하는 제주 흑우
  • 뉴제주일보
  • 승인 2019.12.11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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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연철 제주대학교 생명공학부 교수·논설위원

최근 한국과 일본은 무역 분쟁으로 외교적 마찰이 커지고 있다. 일본이 한국에 단행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 핵심 소재의 수출을 제한하면서 對(대) 한국 경제제재에 돌입했다.

이러한 조치의 원인이 2019년 대한민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손해배상 사건 배상 판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 우리 국민은 또 다시 분노하고, 일본제품 불매 운동을 벌이는 등 불편한 한일관계가 지속되고 있다.

일제강점기 시대에 우리나라는 3만 점 이상의 문화재가 파손되고 약탈당했으며 고유의 유전자원인 가축도 강제 반출되는 수모를 겪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기록을 보면,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우리나라 한우 150만두 이상이 일본, 중국, 러시아 등지로 반출된 기록이 남아 있다(축산과학원 배포자료, 2008년).

이 당시 우리나라에는 적황색, 흑색, 얼룩 등의 다양한 모색을 가진 한우가 존재했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시절 모색을 적갈색으로 통일되면서 다른 모색의 소들은 사라져 버렸다. 조선 시대부터 임금님 진상품으로 기록돼 있는 제주 흑우도 이 시기에 일본에 수탈 대상이 돼 일본으로 반출됐다. 그 결과 2008년도에는 제주도에 남은 제주 흑우 개체가 96마리로 멸종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해방 이후 우리나라는 한우 모색을 황갈색으로 통일하면서 본격적인 개량사업을 시작했다.

1960년에 한우 개량 협의회가 발족한 이래 1970년에 한우 개량사업을 추진부터 1972년 한우 개량 목표 및 방향설정, 1978년 한우 순종 및 교잡개량 이원화가 이뤄졌다.
이어 1980년 한우 육질 육량 개량, 1987년 한우보증씨수소 선발, 2005년 한우육종농가 지정제도 도입, 2013년 후대검정 전문 농가 제도 도입 등 지금도 한우는 60여 년간 지속적인 품종개량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1992년 정부의 육류 도체 등급제 실시계획 발표에 따라 교잡우가 한우로 대체되고, 후대검정을 통해 씨수소 선발을 통해 한우가 안정적으로 사육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게 됐다.

제주 흑우는 어떠한가? 제주특별자치도 축산진흥원에서도 제주 흑우 복원을 위해서 1992~1993년에 제주도 전역을 다니며 제주 흑우 10마리를 수집해 복원하기 시작했다.
이후 제주 흑우는 2004년 국제식량농업기구(FAO)에 한우 품종 4종 중 한 계통으로 등록됐고 2013년도에 천연기념물 제546호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

현재 제주 흑우는 농가, 축산진흥원, 국립축산과학원 난지축산연구소, 서귀포시 축협 생축사업장 등에서 약 1270여 마리가 사육되고 있다(등록우, 실용축 포함).
이처럼 제주 흑우의 가치인정과 보존에 대한 의미 있는 성과를 이뤄냈지만 제주 흑우의 개량, 증식 및 명품화 사업은 더디게만 느껴지고 성과가 적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한우보다 성장속도가 느리고 증체율이 낮아 경제성이 낮다는 이유로 기대만큼 증식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지난 60여 년간 지속된 한우 개량사업에서도 볼 수 있듯이 가축개량의 성과는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하고 꾸준히 지속해야 얻을 수 있는 어려운 일이다. 제주도에서도 제주 흑우의 가치, 우수성을 알리고, 경제적 가치를 올리기 위해 제주 흑우 증식 및 산업화를 위해 지속적인 지원과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들이 결실을 맺어 일제강점기를 지나오면서 멸종위기에 처했던 역사 속 아픔을 간직한 우리 제주 흑우가 다시 한라산 중산간을 뛰어놀고 제주 흑우를 생산하는 농가와 관련 산업이 크게 성장해 제주도 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제주의 흑우로 자리매김 하기를 기대해본다.

뉴제주일보  cjnews@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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