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랑우탄의 술과 송년회
오랑우탄의 술과 송년회
  •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 승인 2019.12.09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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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 밀림에 서식하는 오랑우탄(원숭이의 일종) 이야기 하나.
오랑우탄은 지능이 워낙 발달되어 그들의 약은 꾀에 흔히 사람들이 놀아나곤 한다.
이들을 총으로 쏴서 죽일 순 있어도 살려서 생포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원주민들은 세계의 동물원 등에서 주문이 오면 오랑우탄을 잡기 위해 술을 애용했다.
오랑우탄은 독한 술을 가져다주면 냄새를 맡아보고 절대로 먹지 않는다.
그래서 원주민들은 이들 오랑우탄이 늘 마시는 물통에 독한 술 몇방울을 떨어뜨려 두었다.

오랑우탄이 이 음료를 마신다. 다음날에는 술의 혼합량을 조금 더 늘린다. 술의 향기를 터득한 오랑우탄은 맹물보다는 이 도수있는 음료를 즐겨 마시게 마련. 술의 혼합량은 날이 갈수록 늘어간다. 어느 날 물에 탄 술이 아니라 술 그 자체를 놓아둔다.
오랑우탄은 이 술을 폭음한다.

▲결과는 뻔하다. 만취한 오랑우탄은 쓰러져 깊은 잠에 빠져버린다.
원주민들은 쉽게 오랑우탄들을 포획하고 그들이 들인 술의 원가보다 수십배의 값으로 팔아 넘긴다.
세계의 동물원에 앉아있는 오랑우탄의 슬픈 눈은 “아~ 왜 그 술을 먹었는고….” 하는 후회의 눈빛이라나?

오랑우탄족의 비극을 한 낱 웃음거리의 씨로 해서 그들의 어리석음을 탓해버리면 그만일는지 모른다.
그러나 오랑우탄을 우리 주위의 사람들로 바꾸어 놓고 보면 그냥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은 아닐 듯 하다.
술을 폭음하고 다음 날 아침에 “아~ 왜 그렇게 술을 먹었는고….” 후회하고 자책하는 슬픈 눈들이 우리 주변에 흔하다. 사람이 오랑우탄을 닮았나, 오랑우탄이 사람을 닮았나. 그래서 오랑우탄을 유인원(類人猿)이라고 하는 걸까.

▲세모(歲暮)를 바라보면서 거의 매일 저녁 모임의 연속이다. 5개월 앞으로 선거가 다가와선지 이런 저런 모임도 많아졌다.
경제가 어려워 술자리가 많이 위축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송년회다, 동창회다 하는 ‘술판’은 예년과 다름없다.
문화강연, 공연관람, 이웃돕기 같은 색다른 송년회가 없는 건 아니지만 여전히 먹고 마시기가 대세다. 문제는 음주가무형 송년회를 바라는 사람은 극소수라는 점이다.

직장인 1000명에게 먹고 마시는 송년회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79.9%가 ‘바뀌어야 한다’고 답한 것만 봐도 그렇다.
열에 여덟은 억지로 송년회에 끌려가는 셈이다. 원하는 것은 ‘문화 송년회’라는 대답이 58.6%로 가장 높았다.
다음은 직원들 노고를 격려하는 시상식 송년회(40.0%), 봉사활동을 통한 나눔 송년회(30.8%) 순이었다.

▲재미있는 건 속 마음과 상관없이 올 해도 실제 직장인들은 ‘먹고 마시는 송년회를 계획 중’이라고 답했다는 거다. 영국 극작가 제롬은 “우리는 서로의 건강을 위해 축배를 들지만 정작 자신의 건강은 해친다”고 했다.
가뜩이나 바쁜 연말에 원치도 않으면서 아군끼리 술로 내상을 입는 일은 피할 일이다. 회식을 핑계로 아랫사람들에게 술 먹이고 밤 늦도록 집에 가지 못 하게 한 직장 상사에게 손해배상 판례도 나온 마당이다.

송년 술자리를 할 경우 5시부터 시작해 3시간 이내에 끝내고 술잔은 반 잔씩만 권하는 ‘5.3.2 송년회’ 문화도 바람직해 보인다.
제주일보가 송년문화를 들여다봤더니 술자리가 대부분이었던 1세대 송년회와 문화행사를 하는 2세대 송년회에 이어 이제 3세대 나눔 송년회가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해가 가기 전에 이웃돕기로 한 해를 마무리 하는 것이다.

온 국민이 두쪽이 나서 어두운 풍경이 유난히 많았던 올 한 해였다. 착한 선행으로 ‘돼지 해’를 떠나보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부영주 주필·편집인/부사장  boo4960@jejuil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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